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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보는 미국 ㅣ 살림지식총서 83
채동배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평점 :
금년 들어 유난히 쟁송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만나기도 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보수적인 사법계가 쉽게 변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문지상에서 거론되는 사건들 가운데 화제가 되는 판결도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이건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정착되고, 배심원제도가 도입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제도는 미국의 사법제도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다양한 미국의 모습을 공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사법제도를 요약하면서 어떻게 우리나라에 적용할 것인가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 채동배교수의 <법으로 보는 미국>을 읽었습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옛날에 나온 책이기는 합니다만, 미국의 사법제도가 크게 변한 것이 없는데다가, 저자의 제안 가운데 법학전문대학원제도와 배심원제도가 이미 도입된 것을 보면 책의 내용에 대한 신뢰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미국 사법제도가 형성되고 전개되어온 과정과 연방 및 주정부의 법원조직이 어떻게 구성되며 사법체계에서 활동하는 법조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자격을 얻게 되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신대륙으로 진출이 확대된 것은 영국국교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신교도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라고 합니다. 청교도들은 법률에 의한 규제를 혐오하고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공업이 발전하고 인구가 빠르게 늘어가면서 소유권을 분명하게 해줄 필요가 늘었습니다. 법률가 즉 변호사의 수요가 늘게 되었고, 변호사는 영국 유학을 통하여 법률을 공부한 사람이나 현역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법률지식을 배우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법률대학원의 시조는 1870년부터 25년간 하버드 법률대학원장을 지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랭들이라고 합니다. 당시 하버드 법률대학원에서는 계약법, 재산법, 권침법, 헌법, 형사소송법 등을 개설하였고, 교육방법도 암기식이나 주입식이 아닌 문답법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오래 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미드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을 통하여 강의실 풍경을 기억합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국의 사법개혁 시리즈입니다. 그 첫 번째가 변호사 양성제도의 개선입니다. 이 책이 나올 당시 1만명에 달하는 법과대학생들 가운데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법대졸업생들이 배운 지식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며,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폭주하는 업무가 문제가 되던 시절입니다. 또한 재판전 증거교환제도와 배심재판의 필요성도 제기하였습니다. 세 가지 가운데 법학전문대학원제도와 배심원제도는 이미 도입이 되었습니다. 저자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중복되는 점도 있습니다만, 1) 재판 전 상로 증거교환제도, 2) 배심재판제도, 3) 형사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할 것, 4) 제1심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 5) 제한적 관할권을 가진 법원을 더 설립해야 할 것, 6) 법관의 임명제도의 개선, 7)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에 흡수해야 할 것 등입니다. 읽어보면 미국의 사법제도를 통하여 충분히 검증된 것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법이나 법조계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은 미리 밝혀둡니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검찰조직의 개혁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선 조직을 뜯어 고쳐 형사피의자의 인권을 우선하는 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증인을 출두시키는 방법의 개선도 있는데, 영장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으로 판사가 서명한 소환명령서 혹은 출두명령서를 사용하면 증인이 검찰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만,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저자는 미국의 사법부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만약 정부나 국가기관이 적법절차 없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범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러한 불법과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주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우리나라의 사법제도 역시 이와 같은 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