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J. 페페(곽효정) 지음 / 현자의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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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는 동안 형제들이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명절과 제사 때나 만나던 것을 보면 갑자기 몇 년이 지나간 셈입니다. 전혀 기억에 없는 오랜 옛날 일까지도 시시콜콜하게 기억하고 있는 셋째를 보면 놀라곤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저도 한 기억한다고들 했는데, 그 기억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기억을 화두로 붙들고 있는 저로서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J 페페님의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에세이를 써온 그녀는 “(이 책에) 일상의 장소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살던 집, 학교, 동네 수영장, 카페, 식당… 매일 지나던 길, 가족, 친구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8쪽)” 예민한 저자가 남들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자신과 남들의 마음에 생기는 상처와 그 치유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기억’에 관심이 많은 듯, ‘최초의 기억’을 내밀었습니다. 리뷰를 적는 이 순간 지나 온 저의 삶 가운데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네 살 터울의 막내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은 할머니와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생각들... 그리고 보니 저자와 최초의 기억을 이야기하던 분이 내놓은 최초의 기억과 같은 것인데, 아마도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건은 그 나이에도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억의 바닥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치매에 걸린 환자들을 ‘기억을 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치매환자들은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즉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의 창고에 들여보내는 능력이 사라진 것이지 이미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 있는 것은 여전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보고들은 것 가운데 느낌이 약한 것들부터 기억이 약해져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기억을 지키기 위하여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기록도 즉시성이 있어야 정확한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한 시간과 그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을 정리해보려던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은 빠뜨리지 않고 적어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벽에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눈물이 북받쳤던 저자는 마음을 추슬러서 수영장에 나갔는데, 수영을 하는 동안 다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친지가 주셨다는 위로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울 수 있다는 건 건강한 거예요. 내 나이쯤 되면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와 오히려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는 자꾸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살다 보면 진짜 울어야 할 때에도 눈물이 안 나와서 씁쓸해요.(2341쪽)” 어머니와 이별을 한지 불과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탓인지 이야기를 하다가, 심지어는 혼자있을 대도 울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합니다만, 굳이 그런 모습을 남이 어떻게 볼까 걱정스럽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보시는 분들도 이해해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는 살만큼 살아온 셈이라서 타인의 삶이나 생각에 호기심을 가질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저를 낳아주시고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두 분에 대한 기억이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분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두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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