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와 존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무더위를 쫓는데 장르소설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가 출발하면서 읽기 시작한 <로지와 존>은 정안휴게소에 닿기 전에 모두 읽었습니다. 옆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 창밖의 풍경이 어땠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느 것도 읽는 흐름을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추리소설작가로 떠오르고 있다는 피에르 르메트르의 작품은 처음입니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학과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55살에 뒤늦게 데뷔한 그는 처녀작 <이렌>으로 코냑 페스티벌 최구소설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렌>에서 창조한 인물, 파리 경시청의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알렉스> 그리고 <카미유>로 이어지는 3부작을 기획했다고 하고, <로지와 존>은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의 외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카미유 베르호벤은 145센티미터로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지만, 예리한 지성과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로지와 존>에서는 사건을 이끌어간다기 보다는 로지와 존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대결을 관찰하면서 두 사람의 입장에 서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야기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폭탄테러사건을 둘러싸고 3일에 걸쳐 벌어지는 상황을 분 단위로 쪼개서 뒤쫓고 있는 만큼 긴박하게 흘러갑니다. 3일이라고는 하지만 첫째 날 15시에 시작해서 셋째 날 오전 5시 15분에 상황이 종료되기 때문에 38시간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에 사건이 발생하고 마무리되는 초특급으로 진행됩니다. “누구나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와 마주치면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발을 디디고 있던 빙판에 균열이 생기면,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엉겁결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보통 결정적인 사태가 발생하기까지는 불과 10여초도 걸리지 않는다.(13쪽)”

 

요즈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는 이유는 엄청난 재난을 예고하려는 속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재난은 바로 연쇄폭탄테러입니다. 어느 날 17시 파리 18구 조제프-메를렝 거리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납니다. 도심지역에서 일어난 폭탄테러임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없이 부상자만 24명이 발생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일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폭탄테러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존이 사건발생 2시간 만에 경시청에 출두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두 7곳에 1차 대전 때 사용되었던 140밀리 폭탄을 설치했다고 하면서 현재 복역 중인 어머니와 자신이 호주로 떠날 수 있도록 새로운 신분증과 정착에 필요한 400만 유로를 제공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프랑스국경을 벗어나는 즉시 나머지 여섯 개의 폭탄이 묻혀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사건현장에서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요구를 들어줄 경찰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범인과 경찰은 두 번째 사건의 발생을 가지고 밀당을 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존은 테러전담반의 펠르티에르 반장에게 넘겨져 심문을 받지만 버티다가 이틑날 아침 9시에 터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그것도 어느 유치원에서.... 결국 경찰은 복역중인 어머니 로지를 존과 대면시키게 되는데, 존을 만난 로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외면하지 않을 줄 알았어. (…) 넌 성공할 거야. 난 그걸 알아....(129쪽)”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스쳐지나갔습니다만, 사건이 종결된 다음에서야 이 말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폭탄은 9시가 넘어서도 터지지 않자 범인은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149쪽)”라면서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지만, 베르호벤의 눈에는 혼란스러워하는 기색과 냉담한 거리감이 묘하게 교차하고 있는 것이 감지됩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유치원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은 가운데 오후 2시에는 프랑스텔레콤의 배선실에 설치된 폭탄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저녁 9시 드디어 오를레앙에 있는 유치원에서 폭탄이 터지게 됩니다. 결국 베르호벤은 총리에게 존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존과 로지는 무사히 프랑스를 떠나 호주로 향하게 될까요? 존이 폭탄테러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가 마련한 마지막 반전은 무엇일까요?

 

깔끔하고도 늘어지지 않는 상황묘사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로, 존과 로지 사이에 얽혀 있는 지난한 삶의 수수께끼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피에르 르메트르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