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의 도서관 ㅣ 비룡소 걸작선 36
랄프 이자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오늘 한낮의 기온이 34도, 일을 보러 외출했다가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이렇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찌는 무더위에는 역시 판타지소설이 제 격입니다. 한참을 읽다보면 마법의 세계에 들어선 듯 서늘한 느낌마저 들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http://blog.yes24.com/document/7742268, 을 쓴 랄프 이자우의 판타지 소설 <비밀의 도서관>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스승인 <모모>의 미하엘 엔데의 소설 <끝없는 이야기>의 헌정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끝없는 이야기>의 주인공 바스티안 발타르 북스에게 책 속의 여행을 하게 된 이야기책 <끝없는 이야기>를 손에 넣었던 고서점의 주인이 바로 <비밀의 도서관>의 주인공을 맡게 되는 칼 콘라드 코레안더입니다. 즉, 랄프 이자우는 스승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판타지를 선사하는 스승같은 존재 콜레안더의 활약을 그려내는 것으로 엔데에 대한 존경을 표한 것으로 읽힙니다. 하나 더, 바스티안이 여왕께 ‘어린 달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면 코레안더는 ‘현명한 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편부 슬하에서 구박을 받아가며 자란 코레안더는 매사에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것만은 타고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주인공에게서 저와 비슷한 구석을 발견한 때문인지 공연히 애정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직장을 얻어야 하는 코레안더가 우연히 고서점에서 일을 배운 다음에 서점의 운영권을 넘겨받을 사람을 구한다는 타데우스 틸만 트루츠씨의 광고를 보게 되지만, 전차 때문에 약속시간에 그만 늦는 바람에 주인을 만나야 할지 망설이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트루츠씨의 고서점이 여늬 평범한 고서점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되려다보니 코레안더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책마다 가지고 있는 특별한 냄새를 맡아 책을 구별할 수 있는 재능입니다. 사실 도서관에 쌓여있는 옛날 책을 촤르르 넘기면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만, 그 냄새가 책마다 다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코레안더가 트루츠씨의 눈에 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특별한 능력과 함께 “어렸을 때부터 책을 삼키듯 읽었어요. 슬플 때 책을 읽으면 슬픔을 잊을 수 있었거든요.(23쪽)”라는 고백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트루츠씨가 안내하는 그의 서점은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장소입니다. 사실 도서관을 무대로 펼쳐지는 대표적인 장편소설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com/yang412/12891200>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희귀본 금서를 숨긴 도서관이 무대가 되는 반면, 트루츠씨의 <비밀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들은 대단한 것들입니다. 베르너 풀트가 쓴 <금서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273020>에서 뒤쫓고 있는 금서 정도는 아주 평범한 소장도서에 불과하며, 과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처럼 불에 타서 세상에서 사라진 책은 물론 저자의 생각만으로 기획단계에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까지도 소장되어 있는 환상의 도서관인 것입니다.
문제는 최근 이 도서관에서 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트루츠씨는 책들이 사라지는 이유를 조사하기 위하여 코레안더에게 고서점을 맡기고 환상세계로 들어간 것인데, 정작 코레안더 역시 환상세계로 트루츠씨를 찾아나면서 이야기는 무대는 고서점에서 환상의 세계로 옮겨지게 됩니다. 코레안더는 환상세계에서 망각의 숲과, 기대의 집, 구름성, 도둑들의 도시, 그리고 검은 상아탑 등에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모으고, 늘 망설이는 스스로에게 숨겨진 영웅적 기질이 드러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모든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코레안더는 환상의 세계에서 불과 7일을 보냈지만, 그가 환상의 세계로 떠나서 고서점으로 돌아왔을 때, 고서점이 있는 세계에서는 7년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꿈 속에서 노닐었던 셈입니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줄 환상의 세계를 한번 즐겨보시지 않겠습니다. <비밀의 도서관>으로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