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6
제롬 카린 지음 / 시공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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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뉴욕은 수많은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보고 들어 아주 익숙한 듯 하면서도 막상 그곳에서 숙소를 얻어 묵은 적은 꼭 한 번 있습니다. 아참 악천후로 비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던 경우도 한 번 있기는 합니다. 처음 뉴욕을 방문했던 것은 미네소타에서 출발해서 보스턴을 거쳐 플리머스에서 대서양을 만나서 워싱턴까지 내려가는 길에 뉴욕을 구경하느라 맨하탄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묵은 것이 처음입니다. 뉴헤븐에서 뉴욕으로 들어가는 길에 도로 옆 옹벽에 스프레이를 뿌려 그린 그래피티를 발견하고서 ‘드디어 뉴욕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차를 운전해서 이동하면서 구경을 했는데 뉴욕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결국은 호텔을 차를 세워두고 하루 버스투어를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주마간산식으로 지나면서 가이드의 말도 안되는 설명을 들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황망한 추억만 남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뉴욕의 본토박이 소설가 제롬 카린이 쓴 <뉴욕, 한 도발적인 도시 연대기>는 뉴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인 뉴욕, 마천루와 슬럼이 어우러진 도시의 제국, 이민의 도시, 범죄의 도시이자 금융의 도시. 다양한 기상천외의 문화를 발 산해내는 뉴욕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조명하고 있는 책으로 풍부한 원색 사진과 삽화를 곁들였다.”라는 책소개말이 이 책에 담긴 내용을 함축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로 유럽인들에 의하여 뉴욕이 개발되는 과정을 간추린 역사를 먼저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1626년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가 설치한 뉴네덜란드라고 하는 작은 식민지의 총독으로 지명된 페테르 미뉴잇이 단돈 24달러를 주고 알곤킨이라는 떠돌이 인디언 부족으로부터 맨해튼섬을 사들였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미뉴잇은 맨해튼의 곶 끝에 요새를 구축하고 뉴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붙였고, 200여명이 거주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664년에는 영국이 총 한방 쏘지 않고 이곳을 빼앗아 뉴욕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뉴욕을 119년간 독재적인 몽유병 환자처럼 식민지를 다스렸을 뿐 영국적 요소를 남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영국 국왕에게 저항하는 13개 식민지들의 저항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독립을 쟁취한 뒤, 뉴욕은 뉴욕주의 주도였고 미합중국의 수도가 되었지만, 이내 주도는 올버니로, 수도는 워싱턴으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처음 차를 운전해서 뉴욕을 찾았어도 숙소까지 문제없이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맨해튼섬의 격자모양으로 된 독특한 도로망 덕분이었습니다. 맨해튼섬의 도로구획이 격자구조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1835년에 발생한 대화재로 인하여 뉴암스테르담의 구 시가지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뉴욕시의 초대 시장인 드 위트 클린턴과 미래의 거리 설계도 작성을 위한 위원회의 위원들은 2928개의 블록으로 이루어진 도시, 맨해튼의 격자구조를 구상했던 것입니다. 뉴욕항에서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건너가는 길에 만난 엘리스섬이 당시 이민자들을 선별하던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엘리스섬을 ‘눈물의 섬’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같이 배를 타고 온 가족들이 때로는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으로 눈물을 뿌리기도 했고, 트라코마라는 전염성 안질환을 걸러내기 위한 눈검사가 고통스럽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20세기의 격변기에 빠르게 변모해단 뉴욕의 모습을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는 이야기체로 풀어냈는데, 작가는 할렘가를 별도의 이야기로 정리해냈습니다. 사실 할렘가는 버스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창밖의 사람들과 눈도 맞추지 말라는 가이드의 엄중한 경고 때문에 제대로 내다보지도 못하고 지나쳤던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컸습니다. 사실 밤 중에 숙소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까지 걸어서 구경을 다녀올 정도로 시내의 치안은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뉴욕에서 지내면서 나름대로는 많이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뉴욕, 신화적 범죄도시’라는 제목 아래 풀어내고 있는 설명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가 뉴욕을 방문했던 1993년 봄만해도 뉴욕항을 떠나는 연락선에서 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과거는 그랬습니다만, 뉴욕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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