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 바다의 정복자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3
이브 코아 지음 / 시공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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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를 갔을 때 우연히 방문한 박물관에서 바이킹의 유적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이킹 박물관으로 기억합니다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Runestone Museum인 것 같기도 합니다(http://www.roadsideamerica.com/story/2607)] 1898년 스웨덴에서 이주한 농부에 의하여 발견된 이 바위에는 1362년에 8명의 고트족 사람과 22명의 노르웨이 사람이 이 지역을 탐험했다고 룬문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룬문자가 조각된 바윗돌의 진위 여부를 분명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때 박물관에서는 허드슨만에 상륙한 바이킹들이 캐나다를 종단해서 알렉산드리아 지역까지 진출했다고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박물관 앞에 서 있던 거대한 바이킹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네아폴리스에 근거를 둔 아메리칸풋볼팀의 이름이 바이킹스입니다. 바이킹과의 인연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상륙하였을까요?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로 나온 이브 코아의 <바이킹: 바다의 정복자들>은 그런 의문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이킹의 뿌리를 찾아들어가면서 이들이 유럽 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진출한 흔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바이킹의 선조들은 기원전 6,000년부터 원시적인 작은 배를 타고 스칸디나비아 주변의 바다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바이킹들이 살던 곳은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크입니다. 로마제국이 붕괴되면서 바이킹들은 북유럽국가를 시작으로 침략을 시작하였는데, 9세기에 이르러 바이킹은 서유럽 전역을 강타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300년 이상 바이킹은 끊임없이 이웃나라를 침공하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스웨덴인, 덴마크인(데인인) 그리고 노르웨이인으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스웨덴인은 동쪽으로 데인인과 노르웨이인은 서쪽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인은 아일랜드를 침공하여 바이킹부족국가를 세우기에 이르렀고, 대서양을 건너 그린란드에도 거주한 바 있으며, 북아메리카 인디언과 교역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콜럼버스보다 5세기나 앞선 992년의 일로서 붉은 털 에리크의 아들 레이프는 35명의 바이킹들을 이끌고 그린란드를 거쳐 래브라도반도에 상륙하여 빈란드라고 이름짓고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탐험에서는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주우하여 대결을 벌이기도 했으며, 세 번째 방문에서는 600명의 남녀 바이킹족들이 아메리카대륙으로 떠났지만 결국은 정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린란드로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바이킹이 자신들의 삶의 근거지를 벗어나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조선술과 항해술에 기반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이킹들은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등을 침공하여 그곳에 거주하기도 했으며, 러시아를 경유하여 내륙의 강을 거슬러 비잔틴세계에 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전략 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활상과 종교 등에 대하여도 설명하였습니다.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의 특징인 권말부록 성격의 기록과 증언에는 바이킹족들이 남긴 서사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이킹족은 1,000년 무렵 라틴문자가 전해지기까지는 다뉴브강 중류지방의 게르만인이 처음 사용하여 덴마크로 전해졌다는 룬문자를 사용하여 비석 등에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바이킹문명의 대표적 문학작품으로 <에다>에 실려 있는 시들이 있는데, 구전되어 오던 이 시들은 스칸디나비아의 신화를 노래한 것들로 13세기들어 스너리 스투를루손이 집대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에다의 시들은 입으로 읊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읽으면 그것이 지닌 본래의 맛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시들은 두운법(頭韻法)의 기교와 악센트로 묘미를 살리는 시의 연, 온갖 수사적인 장치로 자익된 시로서 영웅적 행위와 영광스러운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139쪽)

 

또한 부록에서 소개하고 있는 뉴펀들랜드 북서 해안 근처의 랑소메드에서 빈란드의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일찍 북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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