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만든 사상들 살림지식총서 79
정경희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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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선거에 의하여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일이 벌써 두 차례나 일어났습니다. 그 첫 번째 때도 선거결과에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부가 출범하면서 잦아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정권교체가 일어났을 때에는 선거결과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을 넘어서 새로 들어선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로 의심될 정도로 강하게 선거결과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2000년 미국의 대통령선거의 사례입니다. 당시 민주당은 앨 고어 부통령이 후보로 나선가운데 공화당은 조시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후보로 나서 격돌하였습니다. 두 후보가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승부는 플로리다주의 결과에 달려있는 상황이었는데, 플로리다주는 조시 부시 후보의 동생 제프 부시가 주지사로 있었습니다. 문제는 플로리다주의 개표결과가 2,700표 차이로 부시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지만, 개표과정에 문제가 제기되어 일부 선거구에서 재검표가 이루어진 결과 그 차이가 400표차이로 줄었지만,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던 연방대법원이 재검표 중지를 결정하고, 앨 고어가 이에 승복하면서 조지 부시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 한 달 반 넘게 지속되었음에도 폭력사태 하나 없이 평온을 유지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은 대법원 결정에 승복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선거제도에 자체에 대한 논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선거인단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나라의 중앙일간지에 실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라고 가름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경희교수님은 당시의 상황을 보면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요소, 즉 미국의 법치주의, 삼권분립 등이 독립전쟁을 비롯한 건국초기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미국의 헌법이 만들어진 과정을 추적하여 정리하여 <미국을 만든 사상들>에 담았다고 합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꿈꾸던 혁명기에 미국을 움직이던 사상은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의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상이었던 것으로 믿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 들어 공화주의적 수정론자로 불리는 학자들이 18세기의 영국과 미국의 정치사상을 재해석하여 자유주의 대신 공화주의가 미국혁명의 사상적 뿌리였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사상적 뿌리를 존 로크에 두고 있는 사상체계로, 계약에 의한 정부의 형성, 인민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소유권의 보장, 폭정에 대한 저항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9쪽)”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공화주의는 르네상스의 도시국가 피렌체까지 소급해 올라가 마키아벨리와 도시공동체적 인문주의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화주의의 이상적 정치체제는 미덕을 지닌 시민들이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체제, 즉 공화정으로, 그 목표가 공익을 구현하는 데 있는 정부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9쪽)” 결론을 말씀드리면 미국의 혁명기의 사상가들은 공화주의자였으면서도 자유주의자였으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강조했다고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독립전쟁에서 승리가 확실해져가던 1781년 13개 공화국은 연합헌장을 채택하여 느슨한 국가형태 즉 연합을 이루게 되는데, 이와 같은 국가형태에서 개별 공화국들은 각기 국가로서의 주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후에 사회 계층 간의 갈등과 불안요인이 가중되면서 연합회의를 대치할 강력한 중앙정부 수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1787년 연방헌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당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버지니아주를 중심으로 한 반연방파가 연방헌법의 제정을 반대하고 나선 것입니다.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의 격렬한 힘겨루기 끝에 버지니아 비준회의는 89대 79로 헌법을 비준하였고, 이어서 뉴욕까지 비준을 마치면서 연방헌법이 제정되었고 연방헌법에 입각하여 1789년 조지 워싱턴을 수반으로 하는 연방정부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결국 연방주의자나 반연방주의자 모두 근본적인 정치사상은 크게 차이가 없었으며, 권력의 집중에 대한 두려움 역시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반연방주의자들은 헌법에는 인민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고 본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연방주의자들은 사리를 공익보다 앞세우는 파당을 두려워했기에 이를 제어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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