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두툼한 두께에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변화에 이르기까지 읽어내는데 집중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이들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 차례의 반전 때문에 리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제목에 이야기의 시발점과 사건의 동기가 충분히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젠틀맬 & 플레이어>는 영국과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켓경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영국 정상급 크리켓 경기에서는 선수들을 ‘젠틀맨’과 ‘플레이어’로 구분했다고 하는데, ‘젠틀맨’은 보수 없이 경기에 참가하는 유한계급의 아마추어 선수를, 플레이어는 보수를 받고 뛰는 직업 선수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은 제목에 담긴 의미처럼 부와 명예와 전통의 상징인 영국의 한 유서 깊은 사립학교를 동경하던 아이가 결국 그 학교를 파멸시키는 일에 도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무대는 영국의 유서 깊은 남자 사립학교인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입니다. 참고로 영국의 중등교육은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문법학교와 졸업 후 취직을 목표로 하는 기술학교, 그리고 두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하위권학생들을 위한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현대학교로 나뉘어 있다가, 1975년 정부의 교육평등정책에 따라 종합학교로 일원화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은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가을학기가 시작하는 9월 6일 월요일부터입니다. 처음 일주일동안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매일 적다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는 일이 많아서인지 주목할 사건을 중심으로 건너뛰기 시작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11월 4일까지 이어집니다.

 

처음 책을 읽어가다가 갑자가 화자를 헷갈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이 이야기의 화자는 두 사람입니다. 그리고 보면 사건의 전개에 따른 구분은 체스게임의 용어에서 따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폰(Pawn)에 등장하는 ‘나’는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수위로 일하게 된 아버지와 함께 사택에서 살고 있으면서 이 학교가 아닌 서니뱅크파크 종합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체스에 사용되는 말 중 하나인 폰(Pawn)은 장기의 졸에 해당하고 양측이 각각 8개씩 가지고 있습니다. 폰은 장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약한 말인 것처럼 세인트오즈월드는 언감생심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킹(King)에 등장하는 ‘나’는 33년째 이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라틴어 교사 로이 스트레이틀리입니다.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만큼 교장을 비롯한 학교 행정가들과는 부딪히는 경우가 많지만, 학생들로부터는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학생들의 심리를 제대로 꿰뚫고 있으며 뛰어난 기억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이는 세인트오즈월드의 상징이고 킹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왕과 졸이 대결하게 된다는 이야기일까요?

 

이야기는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시작합니다만, 아버지를 따라 사택에서 살면서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를 휘젓고 다닌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회상의 형식으로 곳곳에 섞여 들기 때문에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사건들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기 위하여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 어린아이가 장성해서 세인트오즈월드의 신참교사로 부임하게 됐는데, 과연 컴퓨터 교사 미크, 지리 교사 이지, 외국어 교사 미스 데어, 영어 교사 킨, 체육 교사 라이트 등, 다섯 명의 신참교사 가운데 누가 나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화자의 하나인 로이가 킹인 이유, 폰에 해당하는 또 다른 화자인 과거 수위의 아이이자 신참교사가 도대체 어떻게 엮이게 된 것인지는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가서야 드러나게 됩니다만, 일단 폰이 이곳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일들은 또래의 아이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소소한 일인데, 그런 일상이 지나가다가도 생각지 못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그 사고에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의 축을 크게 흔들어 놓기 마련입니다. 폰의 어린 시절은 세인트오즈월드 탐험과정에서 우연히 조우한 5학년생 리언과의 관계가 전부였다고 하겠습니다. 그 관계가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끝났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폰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만큼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세인트오즈월드로 입성을 꿈꾸게 된 것이고, 이곳을 33년이나 지켜온 로이에게는 전통을 지키는 방어자의 역할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9년 전 일어났던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세인트오즈월드에 복수심을 품고 들어온 폰이 복수를 위하여 살인을 하고, 소문을 조작하여 선생님들을 궁지에 몰아 학생들이 떠나게 하는 등 학교가 공중분해 되기 직전까지 몰아가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살인까지도 불사한 폰의 정체와 사건의 결말은 의외의 상황으로 정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완전범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세상에 완전범죄는 절대로 없다는 믿음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