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 백 년을 함께한 친구
이순원 지음 / 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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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고 감동을 받았던 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http://blog.joins.com/yang412/9554069>을 쓴 이순원 작가님이 신작을 내놓았다고 해서 반갑게 받아들었습니다. 대관령 서른일곱구비를 아들과 함께 걸어서 내려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읽어가면서 ‘아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라고 리뷰에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은 정말 몇 안되는 다시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이순원 작가님의 <나무>는 ‘백년을 함께 한 친구’라는 부제처럼 오래 된 시골집 마당을 지켜온 나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우람한 나무의 널따란 그늘 아래 편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을 표지로 삼은 것을 보면 나무와 한 남자 간의 진한 우정을 그려냈을 것으로 작하게 합니다. 하지만 내용은 백년을 넘게 부엌 문밖을 지켜온 밤나무가 여덟살 짜리 손자 밤나무에게 전하는 이 집에 사는 사람들과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내려 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춘궁기에는 끼니를 어떻게 이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겠습니다만,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은 열세 살에 결혼한 새신랑이었다고 합니다. 오직 집 한 채와 민둥벌거숭이 산이 가진 것 전부였던 신랑은 신부를 맞던 해 수확한 밤 일곱말 가운데 다섯 말을 부엌 바닥에 묻고서는 나머지 두 말를 곡식과 바꾸어 근근히 겨울을 버티고, 봄이 되자 밤 다섯 말 가운데 실한 것들로 골로 민둥산에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다 남은 밤 한 톨을 부엌 밖에 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신랑과 새신부는 밤나무들이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 버텨냈는데, 결국은 밤 다섯 말을 만든 뒷산의 밤나무 숲은 두 사람에게 풍족한 삶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새신랑이 나중에 손자에게 들려주었다는 말은 새겨둘만 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밤 한 톨을 화로에 묻는 것과 땅에 묻는 것은 차이가 있다. 화로에 묻으면 당장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즐겁고 말겠지만, 땅에 묻으면 거기에서 나중에 일 년 열두 달 화로에 묻을 밤이 나오는 것이다.(33쪽)” 새신랑은 밤나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곤궁한 가운데에서도 밤 다섯 말을 산에 심은 새신랑의 이야기는 아들에게로 그리고 손자에게로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나무는 지금의 자신이 된 밤 한 톨을 먹지 않고 심어준 새신랑에게 특별한 사랑보다 더한 특별한 영광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밤나무가 성장해가면서 새신랑과 이야기를 나눈 무수한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나무와 사람 사이에도 있음직한 우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밤나무도 부부가 집을 넓혀 지을 때 나무를 베어야 집을 제대로 앉힐 수 있겠다는 목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한마음으로 거절하였습니다. 신랑을 설명을 들으면 이 밤나무가 특별한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 나무는 같은 밤나무여도 산에 있는 나무들과는 또 다르지. 처음 심을 때 내가 당신에게 주기로 한 나무이기도 하고,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서서 우리 집을 지켜 줄 나무이기도 하니까. 이다음 우리가 나이가 들면 그 나무도 함께 나이가 들 테지. 그러다가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가면 그때는 또 그 나무가 우리 대신 이 집과 우리 아이들을 지켜 줄 거야.(46쪽)”

 

이제 그 나무도 나이가 들어 명을 다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아들 밤나무가 우연히 남긴 손자 밤나무에게 이 집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나무들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줄 뿐 아니라 밤나무로 살아가는 지혜를 전수해줍니다.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 깊은 잠 속에서 먼저 간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나무는 나무로 한평생을 살며 스스로 나무라는 것이, 그리고 나무라는 이름이 한없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식물의 세계도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습니다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밤나무의 말대로라면 세상이 모두 나무들이 사는 세상이면 참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순원작가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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