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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제민의 길
김형기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4월
평점 :
오랜 세월에 걸친 민주화운동이 결실을 맺어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는 신기원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권이었습니다. 국민들이 그와 같은 선택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생동하는 생명을 담아낼 힘이 없습니다. 어쩌면 국민들은 진보정권이 우리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것을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진보 정권은 불과 두 차례 10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하여 다시 보수로 회귀하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5년 뒤에 국민은 진보적 정권의 복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진보세력들은 선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마다 반대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아쉬운 대목입니다.
<경세제민의 길>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및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지방분권국민운동 초대 의장으로서 지방분권 운동을 일으킨 김형기교수님의 에세이들을 모은 책입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경제학과 노동경제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연구해온 대안적 발전모델이 우리나라에서 꽃피우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0년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발표한 칼럼과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 그리고 최근 미국 UC 버클리대학과 하버드대학의 방문학자로 체류하는 동안 쓴 에세이들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 71꼭지의 글들이 크게는 제목에 담긴 ‘경세제민’을 화두로 하면서 글 내용에 따라서 제1부 ‘새로운 진보의 길’, 제2부 ‘한국경제 제3의 길’ 그리고 제3부 ‘지방분권국가의 길’로 나뉘어있습니다.
경제분야에 대한 앎의 깊이가 얕은 탓에 이해가 쉽지 않은 점도 많았습니다만, 그저 읽어가면서 공감하는 부분이나 미심쩍은 부분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저자는 글머리를 ‘진보는 끝났는가’라는 제목으로 열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보정권을 창출해내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지난 대선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돌발적인 발언으로 끝난 것이었고, 이어 터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진보에 대한 결정적 타격이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저자는 수구보수세력들이 정치적 반대자를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책략을 써왔다고 합니다만, 국민들 정서의 바닥에는 민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이 남아 있고, 전쟁과 무관한 세대 역시 이후 산발적으로 이어진 북의 도발이 전쟁의 기억을 이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종북의 의심을 받는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진보는 국민적 지지의 발판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 역시 그와 같은 사태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대선 불복과 대통령 사퇴까지 주장하는 일부 진보세력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체제를 인정하고 헌법질서를 존중하는 건전한 진보는 살려야 한다.(16쪽)”는 보수인사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신뢰하는 새로운 진보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이 책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애국주의와 진보주의가 결합한 애국적 진보주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과거의 칼럼들은 어쩌면 당시의 시대상을 담은 저자의 생각을 적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민심을 잃은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서민을 위한 개혁을 한다면서 서민을 고통에 빠트렸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국민의 생각은 무시하고 집권자 혼자의 생각대로 국정을 끌고 갔기 때문에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쓴 글들은 진보세력이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을 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대안을 추구하는 진보세력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