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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우르줄라 포츠난스키 지음, 안상임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언젠가 한번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지오캐싱을 즐기는 분들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면 선생님들께서 감추어 놓으신 물건들을 찾는 보물찾기를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눈치가 없었던 탓인지 대개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오캐싱은 일종의 보물찾기 같은 것인가 봅니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지오캐싱(geocaching)은 GPS 수신기나 다른 항법 장치를 이용해서 ‘캐시(cache)’라고 불리는 용기를 숨기거나 찾는 야외 활동”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캐시는 작고 방수가 되는 상자 안에 지오캐싱을 즐기는 이들이 그것을 찾은 날짜를 기록하는 ‘로그북(logbook)’이 들어있고, 의미있는 물건을 감추기도 하는데, 캐셔들은 그 물건을 교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캐시는 남극을 포함해서 현재 7개 대륙, 100여개의 나라에 위치해있고 500만명의 캐셔가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캐셔들은 캐시를 찾은 정보를 웹사이트에 업데이트를 하여 정보를 공유하는데, 현재 다양한 웹사이트에 130만여 개의 지오캐시가 등록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오캐싱을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독특한 수사물을 읽었습니다. 독일 추리작가 우르줄라 포츠난스키가 처음 발표한 본격 성인물 추리소설 <파이브>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무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뒤쫓는 베아트리체와 플로린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범인은 캐시를 통하여 사건을 추리할 단서를 제공하는 한편 다음 캐시가 숨겨져 있는 좌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타임슬립을 기조로 하여 딸의 유괴와 죽음을 막기 위한 처절한 모정을 그린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빠른 장면전환과 미스터리한 사건의 전개에 관심을 쏟게 만들었지만, 주인공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어들이는 곁가지가 많아 헷갈리는데다가 유괴사건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들을 무수하게 배치하여 등장인물 모두를 용의자로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바람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즉 사건이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인데, <파이브>는 연쇄살인사건인 만큼 사건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어지는 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을 이어주는 연관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용의자가 누구인지 가늠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단서라도 드러나면 주의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긴박감을 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홍보회사에 다니는 여성 노라 파펜베르크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좌표에 대한 단서는 놀랍게도 죽은 노라의 필적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곳곳에 사건과 관련된 힌트를 남기고 있었다는 것을 다 읽은 다음에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캐시에 담긴 쪽지에 남긴 지오캐시 용어도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TFTH는 ‘찾아 줘서 고마워’라고 해석하는 Thanks for the hunt를 줄인 지오캐시 용어라고 합니다. (독일작가인데 영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런데 범인은 왜 ‘찾아줘서 고마워’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범인은 한번은 베아트리체와 만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베아트리체가 젊은 시절 겪었던 끔찍한 사건에 관한 일을 잘 알고 있는데,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베아트리체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노라의 사체에 남긴 좌표에서 발견한 것은 두 번째 희생자의 신체의 일부와 다음 좌표에 대한 정보인데, 다음 좌표에서도 역시 두 번째 희생자의 신체의 일부가 담겨져 있으며, 때로는 수사팀이 다음 희생자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기도 전에 살인이 벌어져 예고된 좌표에서 사체가 발견되기도 하는 등,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캐시에 담긴 쪽지에는 다음 희생자를 지목하는 정보가 담기기도 하는데 구체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이어서 대상자를 찾아내는 것만도 쉽지가 않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찾아낸 대상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희생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수사팀을 통해서 희생자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얻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보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체의 이야기는 베아트리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때로는 희생자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범인이 아주 짧게 화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두 주 사이에 다섯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줄만한 것인데도, 사회적 반향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범인은 현장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면 용의선상에 올려놓을만한 등장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좌표찾기 때문인지 별로 주의를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예고되었던 것처럼 베아트리체가 범인과 만나게 되면서 범행의 동기와 희생자들과 범인을 잇는 연결고리 등,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