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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최갑수 여행에세이 1998~2012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개정판으로 증보하여 내놓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http://blog.joins.com/yang412/13161643>에서 처음 만났으니, 저자와의 두 번째 만남입니다. 그때도 방금 마친 여행을 통해서 얻은 느낌을 써 내려갔다기보다는 오래된 사진 앨범을 들춰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역시 그런 느낌이 남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내 사랑, 당신 사랑>에서는 글보다 사진에 눈길이 더 끌렸다고... 그만큼 사진에서 무언가 사연이 읽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만,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에서는 사진이 주는 느낌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포토에세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 탓인지 양면을 통하여 실은 한 컷의 사진 귀퉁이에 숨겨놓은 듯 적힌 짧은 글이 사진이 주는 느낌과 서로 통하지 않는 듯한 느낌도 남습니다. “저자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32개 나라 120여 개 도시를 여행하며 남긴 찰나의 기록이자 영혼의 기록이다.”라고 한 출판사의 책소개글을 보면 역시 그동안의 여행사진첩에서 고른 사진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편적인 느낌을 적어 내려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 뚜렷한 목적이나 계산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길 위에 머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재생시킨다.”라는 구절이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그저 의미가 애매한 단어들을 통하여 일상에 지쳐있을 독자들에게 낯선 여행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려는 것은 아닌지....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가늠한다. 그래서 여행은 당신을 여행을 떠나기 전의 당신과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008)”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기 위한 여행을 굳이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이국적 풍광이 빚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국내에서도 좋은 장소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일을 빈둥거리는 일은 꼭 말레이시아 랑카위 해안까지 가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는 글(#022)에 “당신은 나의 도피 / 때로는 절해고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시니피앙”라고 적은 것처럼 저자는 그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현지에 도착해서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성격 탓일까요?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일단 결정을 하고 저질러버려라.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고 나면 모든 것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다음 할 수 있는 건 성공을 기원하는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는 일(#36)”이라고 적은 저자의 권유대로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행은 떠나기에 앞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하는 과정이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고 일정을 짜고, 현지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한 여유 시간을 두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 전체 여행일정이 망가지는 불상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죠,. 여행 첫날 먹은 음식 때문에 생긴 복통과 설사로 밤새 위아래로 쏟은 끝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어봐야 여행지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챙기게 되는 것이지요.
제 경우는 서로 모르는 사람을 클로즈업해서 사진을 찍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저자가 정리하고 있는 좋은 여행의 정의에 부합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좋은 여행은 현지인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자연을 배려하는 일.(#062)” 그리고 이런 글은 읽어내는데 인내심이 필요했다는 점도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딱히...... 어디 갈 데가 있어 가는 게 아니야...... 그냥 여기를 못 견디겠어...... 산다는게 어쩌면...... 시간 때우기인지도 몰라...... 그러니, 이왕 태어났으니 저긴 한번 가봐야지, 저건 한번 타봐야지, 저건 한번 먹어봐야지...... 뭐,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가는거야...... 거창한 이유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어......(#107)” 그리고 블로그를 찾는 이가 던지는 질문에 시원한 답을 줄 수 없다면 아예 댓글을 금지하거나 아예 블로그를 닫아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