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옥수수 문명을 따라서 ㅣ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18
정혜주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옥수수는 세계 많은 지역에서 식량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오랫동안 쌀을 주식으로 해온 우리나라에서는 식량보다는 가축사료로서 혹은 산업원료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연료로서 대체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즈음에는 여름을 지나면서 간식으로 만나게 됩니다만, 옥수수에 대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 미국의 원조물품으로 들여온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을 급식으로 받았던 것하고, 의대시절 강원도 지역으로 하계진료봉사를 나가면 옥수수를 한보따리 싸주셔서 쪄 먹었던 것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옥수수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기억들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도 제가 살던 미네소타 주 남쪽에 있는 아이오와주가 옥수수재배로 유명해서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을 가로지르던 추억도 있기는 합니다.
별 생각없이 먹던 옥수수의 기원을 정리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혜주교수님의 <옥수수 문명을 따라서>입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중남미지역원의 연구성과물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옥수수의 형태와 이름, 종류와 진화에서부터 옥수수를 재배하던 문명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 이 지역에서의 옥수수 문화 그리고 옥수수로 만드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옥수수에 관한 알파에서부터 오메가까지를 샅샅이 살피고 있습니다. 핵심은 옥수수는 마야문명의 고장인 메소아메리카가 원산지로, 마야문명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옥수수의 원산지는 멕시코이고, 기원은 3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옥수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승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이 사용하던 나우아뜰에는 옥수수와 관련된 다양한 언어들이 전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흔하게 사용되는 말로는 다 익은 싱싱한 옥수수를 지칭하는 엘로떼(elote)와 다 익어 건조시킨 옥수수를 말하는 마조르까(mazorca)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서 옥수수는 문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재배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멕시코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옥수수는 끄리오요(criollo) 종이지만, 대략 40여종이 재배되고 있다고 합니다. 원주민들이 옥수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떼오신떼(teocinte)가 현생 옥수수와 가장 가까운 기원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야생 옥수수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재배된 옥수수의 흔적은 6250년 전, 아마도 8700년 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메소아메리카의 농부들은 재배하던 옥수수 가운데 우수한 품종을 선택하여 개량하기를 꾸준해서 3500~3100년 전에는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이 품종들이 오늘까지 전해지게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옥수수의 재배에는 비가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인지 높은 산의 꼭대기, 구름 가운데나 샘의 깊은 곳, 물이 솟는 곳에 사는 비를 관장하는 신, 뜰랄록(tlaloc)이 중요한 경배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비의 실을 부르는 의례에 관한 기록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하는데, 옥수수의 풍요를 기리기 위함인지 옥수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마야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 가운데 천지의 창조를 새긴 이사빠의 비석에는 여러 신들이 모여 태고의 바다로부터 땅을 만들고, 사람과 동물들을 만들기 위해 의논하는 모습을 그려 넣었는데, 맨 아래쪽에는 물이 있고 물 위로는 네모진 땅이 있으며, 땅에서는 나무가 솟아올라 하늘을 받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있는 창조신들은 밭을 만들고 산을 세웠는데, 세계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물과 관계되는 사물이, 오른쪽에는 땅과 관계되는 피조물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뽀뽈부(popol vuh)라고 알려진 마야 문명의 신화입니다. 당연히 세계의 중심 나무는 옥수수인 것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옥수수는 주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들은 옥수수를 어떻게 구하는지, 옥수수의 색깔은 어떻게 나왔는지, 자신들을 보살피는 신들과 옥수수가 어떻게 관계가 되는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재미나는 모험을 곁들여 듣는 사람을 흥미롭게 한다고 합니다. <옥수수 문명을 따라서>를 통하여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옥수수에 관한 메소아메리카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