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 - 미술품 도둑과 경찰, 아트 딜러들의 리얼 스토리
조슈아 넬먼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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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배우의 집에 도둑이 들어 고가의 미술품을 훔쳐 갔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해외의 유명 화가의 작품들이 도난당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도대체 그렇게 훔친 도둑은 과연 팔아서 돈을 만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품을 훔치는 도둑과 이들을 뒤쫓는 수사관, 그리고 훔친 미술품이 유통되는 과정을 추적한 조슈아 넬먼의 <HOT ART>를 읽고서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의 기자이자 출판편집인인 저자는 2003년부터 2011년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도난 미술품을 둘러싼 사람들을 취재하여 도난 미술품이 유통되는 과정의 많은 부분을 밝혀냈습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미술품을 훔치는 사람들, 미술품 도난사건을 뒤쫓는 수사관, 도난 미술품의 유통에 개입하는 미술품 딜러, 도난 미술품을 등재하여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도난 미술품이 정상적인 미술품 유통망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확인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든 사람 등 무려 13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저자가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는 미술품 도둑에 관한 영화들 가운데 피어스 브로스넌이 멋쟁이 미술품 도둑으로 나왔던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도 납니다. 인터폴 도난 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하는 보니 체글리디는 사람들이 미술품을 훔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합니다. “우선은 미술품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고, 또 연약하고 손상되기 쉬운 작품을 직접 보호해야겠다는 의무감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더 완벽한 자신의 컬렉션을 완성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41쪽)” 물론 그밖에도 별스러운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흔히 모조품을 유통시킨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미술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지저분한 산업 가운데 하나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미술품 도난 사건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적 안목을 갖춘 수사인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가 별로 없는 문제하고, 천문학적인 숫자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미술품 유통시장에서 도난 미술품을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현실, 그리고 미술품 유통에 간여하는 사람들의 윤리의식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LA 경찰국 형사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리처드 히리식은 미술품 도난 사건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이 사건들에는 대부분 용의자가 없었다. 경찰서에서는 보통 용의자가 없는 사건들을 조사하고 다니느라 괜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사건들은 미해결로 남기 쉽고, 실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94쪽)” 그런데 이런 사실들을 까발리면 미술품 도둑들이 활개를 치게되지 않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도 잠시 해보았습니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영국 브라이튼에서 미술품 도둑질을 시작해서 런던을 무대로 활약한 폴의 행적에 관한 내용이 가장 흥미진진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는 항상 필요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해요. 사실 지구상에서 이런 탐욕을 부리는 생명체는 오로지 인간뿐이예요.(82쪽)”라고 한 것처럼, 그가 말하는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음에 관한 돌직구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직한 골동품상이라는 말은 모순덩어리라면서 딜러를 격렬하게 비난하기도 하는데, “똑똑하다 싶은 사람들은 훔친 미술품을 파는 일을 전혀 껄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에게 그것은 범죄도 아니죠. 그냥 좀 나쁜 짓을 하는 것 정도라고 생각해요.(84쪽)”라고 한 말은 우아한 모습에 감추어진 미술품 딜러들의 진면목을 엿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줄리언 래드클리프나 보니 매그네스 가디너와 같은 선구자들이 나서서 도난 미술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도난 미술품이 정상적인 미술품 유통망에 들어오는 시점에서 발견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그나마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술 인질’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익명의 블로거가 등장하면서 미술품의 부정거래에 관한 비밀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블로그의 순기능 사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암시장의 작동원리와 돈세탁에 관한 정보들이 오히려 모방범죄를 유발시키거나 저자가 만난 미술품 도둑 폴이 법의 처벌을 빠져 나간 방법이 범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들을 저자나 옮긴이 모두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독자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는 답변으로 위로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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