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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 확실한 지식을 찾아서 ㅣ 살림지식총서 475
박병철 지음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얼마 전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책을 읽으면서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주제를 잘 요약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데 있어 특히 철학분야의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참이라서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분야의 책을 통해서 이해의 폭을 넓혀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을 먼저 고른 이유는 지난 해 <철학이란 무엇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3128465>를 통해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제기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논하면서 “철학적 지식은 본질적으로 과학적 지식과 다르지 않다. 철학에는 열려 있으나 과학에는 열려지지 않는 지혜의 특별한 원천은 없으며 철학에 의해 획득된 결과는 과학으로부터 획득된 결과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철학을 과학과 다른 학문으로 만드는 철학의 본질적 특징은 <비판>이다.(버트런드 러셀 지음, 철학이란 무엇인가, 176쪽)”라고 결론을 맺고 있었습니다.
‘확실한 지식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병철교수님의 <버트런드 러셀>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요,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정치인이면서 평화운동가라는 다양한 수식어로 설명되는 그의 다채로운 삶은 물론 그의 철학적 사유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러셀은 자서전에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등 세 가지의 열정이 자신의 삶을 지배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러셀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열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러셀의 삶은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색깔을 달리한다고 합니다. 열 한 살 되던 해에 형으로부터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웠던 것이 ‘첫사랑처럼 눈부신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였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수학은 그의 젊은 시절의 화두였다는 것입니다. 서른여덟 살이 되던 해 스승 화이트헤드와 공저로 <수학의 원리>라는 방대한 저술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수학의 원리>에 담은 그의 사상은 ‘수학의 기초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로 시작하여 모든 수학은 논리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을 기본틀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수학철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논리학의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면서 기존의 철학에서 사용하던 문장들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철학적 접근방식은 오늘날 철학의 흐름인 분석적 전통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러셀은 할아버지가 두 차례나 영국의 총리를 지낸, 명망있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까닭에 일찍부터 사회나 정치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20대에는 독일에 머물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연구하였고, 1907년에는 노동당 후보로 하원의원직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러셀이 내면적으로 현실 사회문제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윤리학에 대하여 러셀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도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윤리학의 목표가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에 관한 참인 명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러셀은 윤리학에서 다루는 가치의 문제가 마치 과학이 그러하듯 사람에 따라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지닌 것(68쪽)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년에는 다시 윤리학에 객관성을 부여하려고 시도했다는데, 그만큼 윤리의 문제는 가늠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러셀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원자폭탄공격에 분노하였다고 합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여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나치의 경우와는 다른 측면, 즉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일본이 저지른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너뜨린 행동 역시 나치의 경우처럼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의 투하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국가라는 왜곡된 이미지로 일본의 전쟁범죄까지 덮으려는 것은 분명 잘 못된 일일 아닐 수 없습니다.
‘이성적 시각에서 본 종교’라는 제목의 글에는 종교에 대한 러셀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러셀이 생애를 통하여 꾸준하게 다루었던 주제였다고 합니다. 열다섯 살까지는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을 지녔던 러셀이었지만, 수학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그의 의문의 대상은 기하학의 공리를 넘어 종교에 이르게 되어 열여덟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성적으로 확실성을 지니지 않ㅅ은 것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러셀은 신의 존재와 같은 경우 이성적으로 확인 가능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던 것입니다. 러셀은 자신을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라고 주장했고, 역사적으로 교회에 의해 제도화된 기독교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수많은 해악을 끼쳤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과 무한성이라는 두 가지 본성이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데, 과거에는 종교가 안내하는 도그마적인 믿음을 통하여 가능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도그마적 믿음없이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림으로써 무한성의 본성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즉,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무한성에 이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