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인간
변현단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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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꿈꾸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선친께서도 은퇴를 앞두시고 시골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시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농사일을 해보신 어머니께서는 그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먹었다.’는 자기반성을 붙인 귀농안내서가 나왔습니다. ‘알맞게 욕구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자립인간>입니다.

 

이 책을 쓰신 변현단님은 ‘낮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 밤에는 글을 짓는 작가.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면 바로 실천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며, 사람이든 생활이든 틀에 박힌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대에는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를 꿈꾸며 정치사회운동을 하였다. 30대에는 신문 만드는 일을 하고, 해외 배낭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회문화를 접했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 환경정책을 만들고, 2002년 인도에서 생태운동가인 반다나 쉬바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40대 들어, 경기도 시흥에서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자활공동체인 <연두농장>을 꾸렸지만, 도시에서는 온전한 자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해체하였다고 하는데, 결국은 ‘개인의 자립’을 우선순위에 두고, 곡성 산골로 터를 옮겨 특별한 작위적 공동체가 아닌 ‘자립적 개인의 협력’으로 꾸려나가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 농사를 지어라. 자유롭고 싶거든 농사를 지어라. 농사를 짓되 시골에서 지어라.’고 하는 그녀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농사짓겠다고 시골로 몰려드는 상황이 되면, 그녀가 꿈꾸는 이상향이 이루어지게 될까요? 그녀는 돈과 소비의 순환에 볼모로 잡혀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탈출하려면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지으라는 것인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나 행복할까요?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은 없을까요? ‘결혼이란 서로 좋아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법적이고 공식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 억압적으로 강제되는 일(55쪽)“이라고 정의하는 그녀의 생각이 옳을까요? 그녀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필요한 것은 모두 제공하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녀의 생각은 간혹 아주 위험천만한 것도 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갑자기 중풍 증상이 있으면 향유나 생강즙을 복용한다. 중풍으로 이미 쓰러졌을 때는 인중에 침을 놓거나 급히 엄지손가락과 인중혈을 세게 누르면 차도가 있다. 입이 돌아가는 구안와사의 경우, 석회를 섞어 붙이는데 왼쪽이 삐뚤어졌으면 오른쪽에 붙여서 치료하고 깨끗이 씻어준다.(234쪽)”라는 처방은 한의학적 상식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입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사지에 마비가 오는 증상으로 뇌졸중이 의심되는 경우는 만사를 제쳐두고 응급실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아 적절하게 치료를 받아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도 중풍의 급성기에는 현대의학적 치료를 받도록 권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석회를 붙인다는 구안와사도 최근에는 바이러스에 의하여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초기에 항바이러스제제로 치료를 해야 빨리 회복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960년 이후부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 먹고 육식하는 것이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2013년 들어 최근에는 ‘소식(小食)’이 건강에 좋다는 임상실험들이 발표되었다.(79쪽)”는 대목만 해도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20년 전에 이미 동물실험을 통하여 소식이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뭄과 흉년이라는 자연재해나 전쟁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이 얻은 벽곡방과 구황방이 검증된 식량체계이므로, 반문명, 저에너지, 적은 노동력을 들이고 자연적이라는 점에서 오늘에 재현할 가치가 높다는 주장입니다. 요약해보면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온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퇴행적 선택으로 행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피와 땀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농사를 슬렁슬렁 지어도 되는 것인지도 말입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잘 못된 정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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