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우리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두 개의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 하나는 [민음 한국사]입니다. 서기 전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우리민족의 역사를 정통 역사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먼저 근대에 해당하는 조선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100년 단위로 나누어 분석하며, 사안에 따라서 동 시대의 아시아 혹은 세계사를 대비시켜 세계의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치를 조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건국과 통치의 기틀을 다진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 http://blog.joins.com/yang412/13342028>에 이어, 조선 왕조 성립 이후 두 차례 씩이나 맞은 위기상황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었는가를 다룬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http://blog.joins.com/yang412/13345899>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조선사부터 시작하는가’하는 의문에 대하여 21세기의 시점에서 보는 현실적 관심 때문이라는 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기획은 소설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김탁환작가의 집필로 소설로 다룰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역사가 그 움직임의 거대한 구조에 주목한다면, 소설은 그 움직임의 구체적 세부를 체감하려 든다.(‘소설 조선왕조실록을 펴내며’에서)”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는 그 첫 번째 이야기, 즉 조선왕조의 건국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혁명>이라 한 것 같습니다. 조선건국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은 고려 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활한 인간 정도적’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것처럼 화자는 정도전입니다. 그러면 왜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아니고, 이성계가 여러 차례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도운 이방원도 아니고, 정도전을 화자(話者)로 세웠을까요?
<혁명>은 정도전이 죽음을 맞게 되는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던 1398년 8월 25일 밤, 정도전이 쓴 자서(自序)로부터 시작되는데, 말미에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고는 나라도 새로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도(道)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사람의 이치와 느낌을 분명히 남기는 것이, 미완일지언정 지금 꼭 필요하다.(19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정도전이 고려왕조의 역사를 접고 이성계를 태두로 하여 세운 조선왕조를 통하여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혁명>을 통하여 풀어내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작가는 <혁명>을 통하여 조선왕조의 성립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한 정도전을 주축으로 정몽주와 이성계 세 사람의 긴밀한 힘겨루기의 속살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척살한 이방원의 결정적 한 방이 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로서 이방원은 이성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는 ‘소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궁중사건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를 포괄하는 기록이 될 것이며, 정사와 야사, 침묵과 웅변, 파괴와 생성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생과 국가를 탐험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혁명>은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이 가미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고려사회를 주물러왔던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고려사회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은 목은 이색 문하에서 공부한 정몽주와 정도전 등이 있었고, 이들은 동북면에서 힘을 키워온 이성계와 엮이면서 세 사람이 개혁의 중추세력으로 떠오르며 기울어가는 원나라에 빌붙어 이익을 지키려는 집단과 맞서 혁명을 꿈꾸게 된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에게 집중되어 있는 토지를 몰수하여 재분배하고 소작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는 사전개혁이 성공에 이르면서 혁명세력은 힘을 얻게 되는데, 정몽주는 역성혁명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보았으나, 정도전은 새로운 왕조의 성립이 혁명을 완성하는데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읽은 것 같습니다. “우리 셋은 안다. 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셋 중 하나도 숟가락 위에 서둘러 올라앉아서는 아니 된다. 고려, 이 썩어 문드러진 틀을 완전히 뒤바꿀 힘과 법과 철학은 셋이 만든 삼각형 속에 놓여 있다. (…) 셋 중에 둘, 둘 중에 하나만 남는 길로 가면 혁명은 실패하며, 셋이 경계하고 다투면서도 믿고 의지하여 끝까지 상생하면 혁명은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리라는 것을.(129쪽)” 하지만 인간사는 중심인물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내려는 세력들의 힘까지 더해져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정몽주를 둘러싸고 있던 반 이성계 세력들의 선공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지원세력이 이성계나 정도전의 의사와는 달리 정몽주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것이 역성혁명을 앞당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다만 이성계나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반대하는 정몽주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우연한 사건이 발단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조선의 건국을 둘러싸고 역성혁명을 꿈꾸는 세력들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들 사이에 벌어진 대립과 교감을 생생하게 그려보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