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하트우드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 비룡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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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영드 등 외국 드라마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저도 미드를 즐겨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화 더빙작업을 하시던 매형 덕분에 주말의 명화는 물론 외국 드라마까지 덩달아서 즐겨 본 것입니다. 무인자동차 키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전격제트작전>, 법의관이 주인공으로 나오던 <형사 퀸시>, 극적 반전이 주무기였던 수사물 <형사콜롬보>, 소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하이드> 등등,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리면 무궁무진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외국 드라마보다는 한국 드라마를 더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요? 잘 만드니까요. 특히 톡톡 튀는 대사를 즐길 수 있는 드라마라면 본방사수를 위하여 약속도 잡지 않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 이야기를 할 때는 예과 때 독일어는 물론 라틴어 강의는 물론 의학개론까지 강의해주셨던 이명섭교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TV를 보지 못하게 하면 나간다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신 내용이라고 하면서 수업내용에 안성맞춤한 대목을 인용하시곤 하셨습니다. 그 당시 라디오에서 국보급 출연자로 자칭하시던 양주동선생과도 어깨를 견줄 만큼 박학다식을 자랑하시기도 했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시겠습니다만, 최근에는 <응답하라 1994>에 이어서 김수현씨와 전지현씨가 주연으로 나오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요? 재미있으니까요. 대사들이 감칠맛 날 뿐만 아니라,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수현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전지현씨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드라마를 볼 때는 무대가 되고 있는 장소나 소품에도 관심이 가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김수현씨 아니 도민준교수가 드라마에서 읽고 있던, 미국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동화책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연출은 왜 이 작품을 소품으로 등장시켰을까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고, 북소리에까지 끌고 왔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는 전체 이야기의 절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조선 광해군 시절, 성혼이 된 신랑이 죽는 바람에 과부가 된 여자주인공은 슬픈 신행길에서 때마침 외계에서 UFO를 타고 지구에 도착한 남자주인공을 마주치게 됩니다. UFO의 착륙으로 일어난 소용돌이 때문에 절벽에서 떨어질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을 구출하는 인연을 맺는데, 처녀과부가 된 며느리를 죽음으로 몰아 열녀문을 세우려는 시댁의 흉계로 여주인공은 여러 차례 위기를 맞고, 그때마다 남자 주인공이 나타나 그녀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여자 주인공은 친정으로 돌아가지만 두 사람은 같이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은 남자 주인공을 살리기 위하여 여주인공이 관군의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남자 주인공은 조선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400여년을 이 땅에 살아온 셈인데, 특이하게도 늙지 않고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 외계인의 특성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서 사망신고를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하는 문제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현대의 시점에서 주인공은 지구에 처음 올 때 만났던 소녀가 자동차에 치이는 예지몽을 꾸게 되고, 그녀를 구하지만,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지는 않았던 이유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언젠가 떠나온 별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조선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특별한 그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소녀시절 자동차에 치일 위기의 순간에 도민준교수의 도움을 받았던 소녀는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예계의 대스타 천송이로 성장했고, 어느 날 도민준교수의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드디어 두 사람을 태운 마법의 수레가 같은 궤도를 그리기 시작한 셈입니다. 천송이가 과거의 그녀임을 알게 된 도민준교수는 때마침 400여년을 기다려온 고향별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갈등에 빠지는 상황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주어진 운명을 느끼기 시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도민준교수는 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을 읽고 있었을까요? 이 동화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보면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동화가 적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에는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그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도자기로 된 토끼, 에드워드 툴레인이 이 동화의 주인공입니다. 도자기로 된 토끼가 왜, 그리고 어떻게 여행을 하게 될까 궁금해지는데, 그래서 신기한 여행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옛날 이집트 어느 거리에 있는 툴레인씨 집에 몸통 대부분이 도자기로 된 토끼 에드워드가 살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의 주인은 열 살된 여자아이 에빌린 툴레인입니다. 에드워드는 에빌린의 할머니 펠리그리나가 고향인 프랑스에 특별하게 주문하여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팔다리뿐만 아니라 발과 머리, 몸통과 코도 도자기로 되어있고, 팔다리에는 철사로 이어진 이음새가 있어서 도자기로 된 팔꿈치와 무릎도 쉽게 구부러지고 움직일 수 있었죠. 토끼의 귀와 꼬리는 진짜 토끼털로 만들었는데, 특히 귀의 털 속에 단단하면서도 잘 구부러지는 철사가 들어 있어서 토끼의 기분을 나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할머니는 에드워드의 비단옷과 회중시계, 멋진 모자와 가죽신까지 갖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키가 컸답니다. 귀끝에서 발끝까지 하면 거의 1미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꽤나 무겁지 않았을까요?

 

애빌린은 에드워드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늘 “사랑해, 에드워드”라는 말을 해주었지만, 에드워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요. 물론 말을 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안 한 것이지요. 정작 에드워드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은 펠리그리나 할머니가 들려주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사랑하지 않은 공주의 이야기를 통해서 눈치 챌 수 있습니다. 특히 할머니께서 에드워드에게 “넌 날 실망시키는구나.”라고 속삭였을 때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에드워드가 달라질까요?

 

에빌린과 부모님이 배를 타고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애빌린은 당연히 에드워드와 같이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에드워드도 동행하게 되었는데, 배안에서 만난 마틴과 아모스라고 하는 개구쟁이들이 에드워드에 눈독을 들이면서 사단이 난 것입니다. 둘이서 애드워드를 빼앗아 서로 던지다가 그만 바다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도자기로 된 에드워드는 바다 밑으로 빠져 들어갔고, 이백구십칠일째 폭풍이 불어 들어 올려 졌을 때야, 고기를 잡는 로렌스의 그물에 걸려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로렌스의 아내 넬리의 사랑을 받게 된 에드워드(이 집에서는 수잔나라고 부릅니다)는 애빌린이 하는 말은 귓가로 흘리던 자신이 넬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던 에드워드에게 두 사람의 딸 롤리가 찾아오면서 불행이 다시 시작됩니다. 쓰레기장에 버려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쓰레기장에 온 지 백여든 번째 되는 날, 루시라는 이름의 개에 의하여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되고, 이어서 길을 잃은 부랑자 불을 만나게 됩니다. “넌 어떤 아이의 장난감이었지. 그렇지?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사랑하는 아이와 헤어지게 되었나 보구나.”라는 불의 말에 에드워드는 가슴속에 날카로운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에드워드(여기서는 말론이라고 부릅니다)는 불과 함께 칠년을 지내는 동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멤피스까지 흘러드는데 조차장에서 잠시 쉬다가 직원에게 들키면서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브라이스라는 소년을 만나게 되고 그의 여동생 사라 루스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과의 인연도 그리 길지 못해서 다섯 달이 지나자 많이 아프던 사라 루스가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되면서 에드워드는 자신이 사라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뒤에 브라이스는 에드워드(이곳에서는 쟁글스라고 부릅니다)와 함께 멤피스로 떠납니다. 하지만 멤피스의 한 식당에서 에드워드는 밥값을 내지 못한 브라이스 때문에 식당주인에게 내동댕이쳐지는 바람에 그만 부서집니다. 다행히도 루시어스 클라크라고 하는 인형수선공을 만난 덕분에 스물한 개로 조각난 머리가 제대로 복구됩니다. 하지만 브라이스와 헤어져야 하는 에드워드는 그 작별을 아파합니다. “가지마! 네가 가면 참지 못할 것 같아!” 에드워드는 이집트를 떠날 때와는 달리 많이 변했습니다. 인형의 집에서 에드워드는 자신을 사랑해줄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회의하면서도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끼곤 합니다. ‘아니야, 가능하지 않아. 가능하지 않다고.’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에드워드에게는 잠시 머물렀던 나이 많은 인형이 들려준 말이 희망으로 남습니다. “마음을 열어.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널 위해 올 거라고. 하지만 먼저 네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해.(191쪽)” 그리고 그 기다림이 만남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에드워드가 만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집트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멀리 미국 땅까지 흘러든 에드워드는 여행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하여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펠리그리나 할머니가 걱정하시던 부분을 채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말 오랜 세월이 흘러서 말입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고통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지요.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닌 것에 안달하면서 실제로 자기에게 있는 것은 무심하게 대하기 일쑤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거의 잊고 살아가지요.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말이죠.(205쪽)”라고 적었습니다. 이 동화는 도자기 토끼 에드워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에드워드를 처음 사랑했던 애빌린은 에드워드가 응답을 하지 않아도 애빌린의 사랑이 변함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에드워드, 사랑해. 내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난 널 사랑할 거야.(40쪽)”라는 애빌린의 말이 <별에서 온 그대>에서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이제는 <별에서 온 그대>를 만드는 분들이 이 책을 통해서 도민준교수가 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랑은 노력 없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 읽은 것처럼 어려운 일들을 겪다보면 조금씩 깨닫게 되고 결국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침을 먹게 되면 크게 아프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송이와 키스도 하게 된 것 아닐까요? 4백 년 전에 죽음으로 헤어진 여자아이가 어떻게 현대에서 나타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도민준교수의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만, 어쩌면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랑을 나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된다면 새롭게 등장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궁금해집니다. 천송이는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줄 사람. 우리 아빠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사람 말고, 정말..... 오래오래 평생... 내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고 있기 때문에 도민준교수가 딱입니다. 그렇지만 늘 젊은 모습인 도민준교수는 늙어가는 천송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요? 티토노스를 사랑하게 된 에오스와 같은 심정일까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사랑한 티토노스는 인간이었습니다. 신은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이지만, 인간은 세월이 흐르면 늙고 병들어 죽기 마련입니다. 도민준교수는 자신이 지구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관계를 맺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피해온 것이지만 천송이와의 인연만큼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인데, 앞으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엄청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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