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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브라더스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나쁜 일은 모두 나한테만 생기는 것 같다는 머피의 법칙도 그렇고 세상에는 묘한 법칙도 많습니다. 최근 들어서 홍대 부근이 무대가 되는 책을 자주 읽게 되는 것을 보면 책읽기에도 그런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하~ 글쓰는 이, 음악하는 이, 그림그리는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이번에는 만화를 그리는 이가 사는 동네 망원동이 무대가 되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망원동 브라더스>입니다. 오래 전 물난리를 겪으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던 동네, 홍대와 가깝고 한강에서도 가까운 동네인 이곳에서 사는 친구집에서 자본 적도 있어서인지 공연한 친밀감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화계에 등단은 했지만 생계는 여전히 막연한 30대 노총각은 누가 봐도 대책 없는 루저로 보이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는 부정한 돈벌이는 용납하지 못하는 단호함도 가지고 있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이고, 자신 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도 루저 탈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8평짜리 단칸 옥탑방에 잠시 기숙하겠다는 불청객이 찾아오면 선뜻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망원동 브라더스의 주인공, 35살의 무명 만화가 오작가는 한때 작품을 실어주던 출판사의 영업부 김부장과 만화를 가르쳐준 싸부가 찾아들자 선뜻은 아니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동거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에 가까운 곳에 사는 고시생 후배까지 찾아와 네 사람이 복닥거리는 이 공간에는 집주인 할아버지에다가 음악을 하고 싶은 고등학생 손자까지 찾아들어 그야말로 남의 체온을 실감하는 공간이 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나이도, 신세도 제각각이라서 20대 만년 고시생 ‘삼척동자’, 30대 백수 ‘오작가’, 40대 기러기 아빠 ‘김 부장’, 50대 황혼이혼남 ‘싸부’, 그리고 여기기에다 집주인 60대 오지랖 ‘수퍼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10대 ‘자퇴생’ 등입니다. 누군가 나서 책임을 지는 덕분에 하루하루를 근근히 이어가면서 세상을 버틸 바탕이 될 일거리를 찾는 이들은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진리에 부딪혀 좌절하곤 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주를 살릴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내는데 성공하게 된다는 성공스토리로 마무리하는 김호연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루저들에게 희망이라는 파랑새를 찾아나서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작가가 찾아오면 <썸머타임>이 흘러나오는 홍대 앞 카페 ‘올드 앤 와이즈’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작가가 이 카페에 함께 찾은 여성은 모두 세 사람입니다. 등단 무렵 이곳에 같이 들락거리며 알콩달콩하던 애인이 오작가의 미래가 ‘흐림’이라는 판단이 들었던지 훌쩍 떠나고, 싸부의 소개로 안면을 튼 주연이라는 여자는 힘들게 번돈으로 대학원에 다니면서 신분상승을 꿈꾸는데, 그녀가 오작가에게 관심을 두었던 이유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타깃이 된 남자를 자극하려는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접근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동행하는 수유녀는 오작가의 잠재력를 일깨우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역시 다된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덤비는 사람보다는 미래를 위하여 동행하면서 서로의 특장을 살려주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얻게 되는데, 역시 손금에 나와 있는대로가 아닐까 하는 억측을 해봅니다.
오작가 중심으로 성공스토리를 적었습니다만, 고시를 피난처로 삼았던 삼척동자도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방황을 끝내고, 대책없는 기러기 아빠, 김부장도 음식솜씨를 살려 시작한 식당이 자리를 잡으면서 가족재결합을 꿈꾸게 되고, 황혼이혼을 당한 싸부 역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고, 호랑이 같은 성격으로 자녀들의 외면을 받던 수퍼할아버지도 죽음을 맞으면서 자녀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해피앤딩이 보기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역시 파랑새는 멀리 사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더라는 평범한 진리를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