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사 -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김기태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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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두고 불거진 철도민영화 논란은 KORAIL의 운영현황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등을 돌리면서 수습국면에 접어든 모양새입니다. 사측이나 노측이나 확전을 원하지 않은 듯하지만, 그동안 드러난 정황만으로 보면 KORAIL의 민영화만이 방만한 경영으로 인하여 폭증하고 있는 적자를 줄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철도민영화가 수습되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이슈가 의료민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건강보험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공영의료제도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이 시점에서 민영화가 거론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도 대한의사협회가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나서서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생각에서 읽은 <병원장사>입니다. 제목으로 보아서는 병원을 사고파는 사업에 관한 이야기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대한민국 의료상업화 보고서’라는 부제를 보면 병의원에서 환자를 상업적으로 치료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신 기자입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요약하고 있는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잉시술과 과잉진료, 불법시술의 정황을 환자로 가장하여 확인한 내용을 시작으로, 사무장병원의 폐해, 고사상태에 빠지고 있는 동네의원 문제, 대형병원들의 무한경쟁, 건강검진의 문제점, 공공의료기관의 행태를 짚고, 이어서 돈이 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의 현주소, 수익의 극대화에 대한 부작용으로 드러나는 의료사고, 전공의 문제, 의학교육제도의 문제점, 그리고 의산복합체라는 생소한 개념 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의료현장의 문제를 생생하게 짚고 있습니다.

 

저자도 고백했습니다만, 의료상업화의 현장을 보이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추구하는 작업이 미흡했고, 나아가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달라는 부탁이 전제되었습니다. 머리말의 말미에 적은 “우리나라의 의료는 지금 공공에서 시장으로 난폭하게 떠밀리고 있다. 한국의 의료가 건전한 중심을 잡는 데 이 책이 작은 힘이라도 보탰으면 좋겠다.(11쪽)”는 말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땅에 현대의학이 들어와 자리를 잡기 이전에 전통의학에서도 의료는 공공의료와 상업의료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방된 이후 사회적 여건이 의학교육에서부터 의료전반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가운에 우리나라의 의학은 민간부문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해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의료를 공공의료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영리법인 허용이라는 문제가 의료민영화라는 수사적 표현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2004년 1월, 노무현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의료 같은 지식산업도 집중 육성하겠다.(47쪽)”라는 말로 의료가 다음 세대에 우리국민을 먹여 살릴 화수분이 될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무렵 고위공무원 연수교육에서 제가 발표한 아이디어와 흡사한 내용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최상위 그룹이 의과대학으로 진학하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무렵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전에는 공대 화공-기계-조선-전자-재료 등으로 변해왔는데, 그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내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과대학에 진학한 대한민국 수재들에게 다음 세대의 국민들을 먹여살리는 역할을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정책을 다루는 쪽에 제안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재들이 개업해서 저 먹고 사는데 목을 매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의료는 그야말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고용창출효과가 큰 영역이기도 합니다. 또한 연계된 산업분야가 많아서 파급효과가 큰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환자를 진료하는 분야에 국한해서는 의료산업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만을 대상으로 진료를 한다면 굳이 산업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만, ‘의료상업화’라는 화두가 제시되게 된 원인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적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책 말미에 붙어 있는 추천사에서 대한의사협회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추악하고 불편한 진실의 원인은 (…) ‘잘못된 의료제도’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경제가 어려운 시절, 병의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선택했던 ‘저수가 제도’입니다.(300쪽)” 저수가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담은 낮은 보장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정리하면, ‘저부담-저수가-저보장’입니다. 세월이 흘러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담을 늘리려는 정부의 시도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의료서비스는 선진국 수준으로 받기를 원하면서 비용은 낼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의 의료현장의 문제점을 짚어내는데는 충실했지만, 의료현장의 전반적인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점이 있지는 않나 싶습니다. 역시 원인분석과 대안제시가 미흡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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