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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평점 :
프랑스의 민족학자(民族學者) 레비스트로스의 대표적 저서 <슬픈 열대>를 읽었습니다. 적지 않은 인문서적들이 읽기를 추천하고 있어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정작 읽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인용한 <슬픈 열대>의 첫 구절입니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나의 여행기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105쪽)” 저자가 지금은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민족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던 브라질을 떠나온 것이 15년 전인데, 그동안에도 수없이 해오던 책쓰기를 미루어 온 것은 자신이 해온 민족학이라는 분야에 대하여 대중의 관심에 영합하는 시시콜콜할 모험이야기를 써야하는가 하는 의문에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민족학자의 시각에서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왜곡되어 가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느낀 참담함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기계문명이라는 덫에 걸려든 불쌍한 노획물인 아마존 삼림 속의 야만인들이여, 부드러우면서도 무력한 희생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라지게 한 운명을 이해하는 것까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대중 앞에서 사라진 그대들의 모습을 대신하는 총천연색 사진첩을 자랑스럽게 흔들어내는 요술, 당신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요술을 부리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145쪽)” 그러면서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하여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레비-스트로스를 갈등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인류의 문화가 상호 교섭할 수 있는 힘이 생겨 그들의 접촉을 통해 서로를 부식시키는 일이 드물수록, 각기 다른 문화에 파견된 사자는 그 문화의 다양성의 풍부함과 의의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149쪽)”
문화인류학 분야의 책을 참으로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요즈음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정글의 법칙> 류의 연예오락프로그램들이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우리의 곁으로 끌어오고 있습니다만, 정작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한낱 웃음거리로 지나치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인류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분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자가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1998년에 한국문화인류학회가 편찬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http://blog.joins.com/yang412/10226622>는 좋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임돈희교수님은 기획의도를 담은 머리말에 “인류학에서 발달된 중요한 개념인 ‘문화상대주의’란 세계 여러 문화를 우리 자신의 가치관이나 우열의 척도를 가지고 보지 않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입장으로서 세계화시대에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강조되어야 할 개념이다.” 라고 적었습니다. 특히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된 현실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국수주의는 우리사회를 후퇴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픈 열대>에는 이 책을 번역하신 박옥줄교수님이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된 레비-스트로스의 사상과 <슬픈 열대>에 대한 해설을 앞에 두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 지식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의미에서라면 나는 구조주의자가 아니다.(65쪽)”라는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레비-스트로스를 구조주의 창시자로 간주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레비-스트로스가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회조직이나 행위를 연구함에 있어서 구조적 분석방법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입니다. 박교수님은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조화(調和)에 대한 탐구이며, 어떤 대상들 가운데 내재하고 있는 관계의 체계를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의 구조주의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의 화학적 요소처럼 과학적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자연이나 사회현상에는 임의적인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게 된다.(65쪽)”고 정리하였습니다.
<슬픈 열대>는 모두 9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레비-스트로스가 밀항선을 타고 마르세유에서 뉴욕까지 가는 선상여행을 회고하였습니다. 제2부에서는 과거로 거슬러 철학에 관심을 두었던 레비-스토로스가 민족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과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교수로 취임하는 과정을 소개하였습니다. 이어서 3부에서는 브리질로 가는 항해과정에서 열대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고 4부에서는 브리질에서의 생활과 현지조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소개하였습니다. 5부에서 8부까지는 브라질 내륙지방에 살고 있던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카라족 그리고 투피 카와이브족에 대한 민족지(民族誌)로서,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과 각각 원주민 사회의 문화를 소개하고 분석하였습니다. 마지막 9부는 브라질에서 돌아오는 과정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여행기가 추가되었고, 그때까지의 개인적 체험과 현지조사의 내용을 종합정리하면서 자신이 인류학적 연구에서 부딪혔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문명이 원주민과 처음 접촉한 이래 그 사회를 파괴하는 침략성을 보여 온 데 대하여 분노하고, 서구문명의 침입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사라져 버린 원주민 문명, 즉 ‘사라져버린 실체’를 탐구하고 있는 민족학자라는 직업의 역설에 비통함을 토로하곤 했다는데, <슬픈 열대>에는 저주받은 원주민 사회에서 느낀 레비-스트로스의 비애감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철학에 관심을 두었던 레비-스트로스는 민족학을 전공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학문의 시녀, 즉 과학적 탐색의 시녀나 보조자가 아니라, 의식 그 자체에 대한 일종의 심미적 관조였다. 철학이 수세기에 걸쳐서 점점 경쾌하고 대담한 구성을 다듬어가고, 균형과 능력의 문제를 풀어가며 논리적 세련화를 창안해가는 것을 보아왔는데(162쪽), (…) 민족학의 연구대상인 문화의 구조와 나 자신의 사고구조의 유사성 때문에 내가 민족학에 마음을 두게 된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164쪽) (…) 민족학은 나에게 지적만족을 가져다준다. 세계의 역사와 나의 역사라는 양극을 결합시켜, 인류와 나 사이에 공통되는 근거를 동시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173쪽)”
5장을 시작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 원주민들의 현황을 이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브라질을 발견하였을 당시만 해도 남부 브라질 전체에는 제(Gé)라는 집합적 명칭으로 구분되는, 언어와 문화의 모양에서 상호 관련성을 지니고 있던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해안지역을 점유하고 있던 투피(Tupi)어를 사용하는 침략자들에 의해 몇 세기 전에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해변지역의 투피족은 유럽의 식민지개척자들에 의해 소탕되었지만, 접근이 어려운 숲속으로 물러나 있던 원주민들은 비교적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는 잔혹한 박해를 받으면서 자신들을 외부세계에 전혀 노출시키지 않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거주지역에서 유럽문명이 필요로 하는 자원들이 발견되면서 이를 개발하기 위하여 철도, 전신선 등을 부설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노출되고, 브라질 정부에서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별도의 지역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구문명에 노출되었던 것입니다.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진 문화인류학적 조사결과 가운데 상당수는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그들과 소통하여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레비-스트로스 당시의 현지조사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조사대상 주민들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해석한 것으로 보여 심층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원주민사회에서 관찰한 내용들을 구조적 분석을 통하여 해석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카두베오족이 사용하는 도자기나 목각상과 같은 생활미술품이라거나, 그들이 서열을 나타내기 위하여 몸에 채색하고 있는 가문(家紋)에 해당하는 문신이나 형판을 그림으로 담아낸 것 등이라거나, 보로로족의 서열을 나타내는 성기덮개나 마을의 사회구조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등입니다.
레비-스트로스의 민족지에서 읽은, 저로서는 놀라운 사실은 20세기 초반 지구적 재앙이었던 스페인독감의 악몽이 아마존 밀림 속에 고립되어 살고 있던 원주민들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지나 콜라타가 <독감; http://blog.joins.com/yang412/3963341>에서 ‘스페인 독감은 1918년과 19년에 걸쳐 맹위를 떨쳐 고립되어 있어 외부와 단절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발병하지 않은 지역이라고는 없었다.’고 적은 것처럼 아마존의 밀림까지도 침투했던 것입니다. 한때 1,000명으로 알려진 남비콰라족의 사바네 무리는 1938년에 19명의 남자만이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독감은 호흡기를 통하는 감염성질환입니다. 환자가 기침할 때 튀어나오는 비말에 담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마신 사람이 감염되고,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전염병이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우주적 조화를 구축하려는 감각 속에서는 균형과 연속성을 추구하는 서구의 과학적 논리와는 달리, 원주민의 원시적 사고는 동식물의 세계를 민감하게 이해하는 독특한 지식 습득의 방식일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결국은 원시적 사고는 세계를 하나의 동시적(同時的), 공시적(共時的) 전체로 파악하기 위한 무시간성(無時間性)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해온 작업들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내가 일생을 바쳐서 목록을 작성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제도나 풍습 또는 관습들은 만약 이것들이 인간성으로 하여금 그것의 운명 지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무의미해지고 마는 어떤 창조적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개화이다.(742쪽) (…) 나는 존재한다. 그렇지만 결코 하나의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743쪽) (…) 개인이 집단 속에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또 각 사회가 여러 사회들 가운데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도 우주 속에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여기 있고 또 세계가 존재하는 한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그 가느다란 아치는 우리 앞에 그대로 머무를 것이다.(744쪽)”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인용한 시작부분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슬픈 열대>를 읽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지나간 일을 회상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크나큰 즐거움이지만, 그 기억이 글자 그대로 나타나는 한은 그렇지 못하다. 회상을 해보는 것은 좋아하더라도, 그 고된 일들과 괴로움을 다시 겪어보고자 하는 이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추억은 인생 그 자체이기는 하나, 다른 성질을 지닌 것이다. (179쪽)”라고 적은 글을 읽으면서 제가 기획하고 있는 여행회고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1990년대 초반 미국을 여행하면서 적어두었던 여행기를 손에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년도 넘은 옛날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레비-스트로스가 “과거를 여행하는 자가 되어 내게는 거의 전부가 이해도 안 될 뿐더러 비웃음과 혐오감밖에 못 일으킬 어마어마한 광경에 접하든가, 아니면 현대의 여행자가 되어 사라져버린 현실의 흔적을 뒤쫓아 다니든가 해야 하는(149쪽)”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있었다는 고백처럼, 의미 없는 과거의 여행을 복기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때의 여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읽을거리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답은 이미 쥐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문화인류학 분야로 분류되는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의 여행기와 현지조사를 통하여 발견한 것들을 적고 있어 방대한 분량에 비하여 잘 읽히는 책입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우경화 경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