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니 그랑데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조명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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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읽은 책입니다.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외제니 그랑데>는 발자크의 사실주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낭만주의 시대에 속해 있던 발자크를 사실주의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음과 동시에 작가로서의 성공을 확실히 해준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발자크는 이 작품에서 황금만능주의와 약육강식의 생존 법칙으로 사회의 주역이 되는 부르주아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남성적 억압과 사회적 소외를 겪으며 예속적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세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각을 대비시켜 보여주었다고 요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토록 비중있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으로는 조명원교수님의 번역으로 지만지에서 나온 것이 유일한 것 같은데, 편집자 일러두기를 보면 원본의 50%만을 발췌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스토리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지나치게 긴 묘사나 설명을 생략하였지만, 인물의 핵심적 내용을 빠뜨리지 않았고, 소설의 서두와 결말 부분을 살림으로써 발자크 글쓰기의 특징을 드러나게 했다.”고 했지만, (…)로 표시된 생략된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본문 175쪽으로 요약된 점을 고려한다면 전체 분량을 번역했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 더욱 아쉽습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외제니의) 어머니가 딸에게 남긴 유언은 “여성적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체념적 표현으로 읽힌다.(14쪽)”고 해설을 하였는데, 본문을 보면, “외제니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렸건만, 그랑데 부인은 빠르게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 ‘얘야, 행복은 천국에만 있는 거란다.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거야’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녀가 남긴 말이었다. (…) (141~142쪽)” 이렇게 옮겨진 본문을 읽고 옮긴이가 설명한 내용을 느끼라는 주문은 지나친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다시 왕의 통치 체제로 돌아선 왕정복고기이며, 소뮈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 있는 낡고 음침한 한 저택이 무대입니다. 대체적으로 사회적 격동기에는 신흥세력이 부상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구체제가 몰락하면서 제도적 틈새를 잘 파악하는 사람들이 권력과 돈을 움켜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외제니의 아버지 그랑데 영감 역시 토지의 불하와 포도의 작황에 따라 포도주통을 제작하는 나무공급을 장악하는 것으로 재산을 일구게 되는데, 그 과정 역시 생략된 탓인지 재산축적과정에서 드러났을 그의 비열한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고, 다만 이야기의 핵심줄거리가 되는 외제니와 사촌 샤를의 불행한 사랑이야기로 이끌게 되는 과정에서 그랑데 영감이 파산한 동생의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돈을 가로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저자가 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보다는 옮기는 과정에서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은 모으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돈을 모으는데만 정신을 쏟다보면 자칫 돈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수전노(守錢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랑데 영감은 수전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산한 동생의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비열한 짓을 했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조카에게는 겨우 인도로 가는 여비 정도를 내주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라든가, 멋진 파리지앵 샤를에 빠져서 곤경에 빠진 그에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금화를 건네준 외제니에게 빵만 먹도록 하는 벌을 내리는 행태 등입니다. 이와 같은 그랑데 영감의 폭압적인 행태는 외제니와 그 어머니가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 대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부자가 3대를 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부자는 돈을 모으느라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그 자녀들은 돈을 모으는 방법을 모르니 또한 돈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돈을 물 쓰듯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제니는 아버지 때문에 어렵게 자랐지만 어머니의 영향으로 돈을 제대로 관리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많은 돈을 벌어왔지만, 외제니의 사랑을 외면하는 샤를의 아버지가 남긴 빚을 모두 갚아주었을 뿐 아니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베푸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그랑데 영감이 모은 재산이 사회를 위하여 제대로 쓰이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외제니는 선행의 행렬을 이끌고 천국을 향해 걷고 있다. 그녀의 영혼이 지닌 위대함은 교육의 부족과 유년 시절의 관습을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한가운데에 살면서 속세에 속하지 않는 여인, 훌륭한 아내이지 어머니였으나 남편도, 아이도, 가족도 없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174쪽)”라는 발자크의 마무리에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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