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에서 랭보까지, 길 위의 문장들 - 대문호 12인의 걷기 예찬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외 지음, 윤희기.KU-STP 옮김 / 예문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해에는 뜻하지 않은 무릎부상으로 오랫동안 걷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만, 주말을 이용해서 서울근교의 걸을만한 길을 즐겨 걷다보니 걷기에 대한 글을 쓸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만점인 운동이 바로 걷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걷는 동안 사색이라는 덤까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걷기를 예찬하는 글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걷기에 관한 글을 쓸 때 제가 즐겨 인용하는 책은 다비드 르 브르통교수님의 <걷기예찬; http://blog.joins.com/yang412/12935107>입니다. 이 책에서 브르통교수는 ‘왜 걷는가?’에 대한 답으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걷기예찬, 2002년, 9쪽)”답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멋있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탈 것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딘가를 가려면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특별한 목적이 있어 어딘가를 찾아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즐기기 위하여 걷고, 또 그 느낌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소로우에서 랭보까지, 길 위의 문장>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비롯하여 영미권에서 손꼽히는 열두명의 대문호가 남긴 걷기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특히 고려대학교 국제어학원의 번역전문가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번역에 참여하셨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라 하겠습니다. 옮긴이를 대표하여 윤희기님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 단순한 보행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의 존재확인이며 성찰과 사유의 과정임을 내보인 어려운 글들을 가슴에 안고 끙끙대던 그들이 이제 드디어 길 위에 자신들의 다짐을 묻는다.(7쪽)” 즉 ‘번역’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아 걷기에 나선 이분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예술로서의 걷기’를 쓴 크리스토퍼 몰리는 워즈워스 이전에는 걷기 자체를 즐기려고 여행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마크 롤랜즈 교수는 <철학자가 달린다; http://blog.joins.com/yang412/13228772>에서 달리기는 사유가 들어오는 열린 공간으로, 저자는 자신의 육체가 달릴 때, 그의 사유도 장비나 선택과는 거의 무관한 방식으로 함께 달린다(마크 롤랜즈 지음, 철학자가 달린다, 2013년, 80쪽)”고 했는데, 레슬리 스티븐은 ‘걷기예찬’에서 “진정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 걷기 그 자체에서 희열을 느낀다. 즉, 걷고 있는 동시에 깊은 사색과 상상을 함으로써, 단조로운 걷기 행위에 지성을 자연스레 참여시키는 것이다.(81쪽)”라고 걷기를 통하여 정신적 풍요함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교의 후의로 말을 타고 여행을 했다가 크게 실망했다는 아이작 월튼의 작품에 등장하는 후커의 사례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말이 너무 빨리 달려서, 지팡이를 짚으면서 걸을 때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생각들이 마구 흐트러지는 느낌이었기 때문(89쪽)”이라고 합니다. 제 경우도 걷다보면 무언가에 깊이 빠져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월든호수가에 작은 집을 짓고 자연을 오롯하게 느끼며 살았던 소로우는 자연이야말로 위대한 도서관이라고 하였는데, “나로 말하자면 지식을 향한 욕망은 간헐적으로 솟아나는 반면, 발길 닿은 적 없는 미지의 곳의 공기와 풍광 속에 머리를 푹담그고 싶은 욕망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지식이 아닙니다. 지성을 겸비한 동정, 바로 이것입니다.(190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월트 휘트먼은 ‘노래하리, 저 드넓은 길을’에서 “영혼이 길을 나선다. 육신은 영혼만큼 많은 길을 나서지 못한다. 육신 또한 영혼만큼 위대한 일을 하지만 마침내는 영혼의 여행을 위해 모든 것을 내준다.(233쪽)”고 적어 레슬리 스티븐처럼 걷기가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걷기에 대한 열 두 분의 대문호들의 성찰은 앞으로 걷기를 생각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역도 깔끔하게 되어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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