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논어를 읽으며 장자를 꿈꾸고 맹자를 배워라 1 - 절대지식 동양고전 죽기 전에 논어를 읽으며 장자를 꿈꾸고 맹자를 배워라 1
김세중 엮음 / 스타북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예스24의 ‘2013 상반기 블로그 결산 인기도서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고심 끝에 고른 책입니다. 고른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 첫 번째는 출판사의 책소개에 있는 글제목 ‘군자(君子)와 도인(道人)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다’처럼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그 두 번째는 글쓰기를 풍성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과 시를 엮은 주영숙님의 <눈물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20858>에 소개된 글쓰기에서의 법고창신(法古創新)에 대한 연암의 생각을 배워 제대로 법고(法古)할 길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우리네 속설대로였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공자, 장자 그리고 맹자에 대하여 아는게 없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읽기도 숨찰 정도로 긴 제목의 이 책은(편의상 <논어, 장자 그리고 맹자>로 줄여보겠습니다.)은 ‘깨달음을 본받다, 논어’, ‘도를 꿈꾸다, 장자’, ‘덕을 이야기하다, 맹자’라는 작은 제목 아래 각각 서른세 꼭지의 글을 엮었습니다. 각각의 글은 원전의 구절을 제목으로 하고[예를 들면 ‘명분이 바르지 아니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다(名不正則言不順)], 이어서 이야기의 핵심을 요약한 부분을 앞에 두고, 이어서 원전구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한 다음, ’명언의 역사적 사례‘로 원전 구절과 비슷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동아시아인들의 사상 속에 녹아있는 고대 중국의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 <장자>, <맹자>를 읽어 자아를 통찰하고 세상을 관찰하고 지혜를 얻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습니다만, 방대한 원전에서 나름대로는 고심 끝에 골랐을 것으로 보이는 아흔아흡 꼭지나 되는 주옥같은 말씀을 담아내려는 욕심이 지나쳤던 탓인지 원전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사례들이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장자>편에서 공자를 인용하는 등, 고대 중국철학에 지식이 일천한 까닭에 수긍하기 어려운 글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글을 마무리하면서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만 명분이 바로 서게 되고 이와 더불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자로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는 ‘명분이 바르지 아니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말과 함께 명분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해줬다.(18쪽)” 자로도 이해해서 공자님께서 해주셨다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면 저와 같이 우둔한 독자는 어떻게 이해하란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물의 신 공공(共工)과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우임금은 영을 받지 않은 방풍씨를 참수했다는데 방풍씨의 키가 9m에 달했다는 고사를 들어서 공자는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과 전투를 치를 때 발견했다는 거대한 뼈가 방풍씨의 뼈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거대한 뼈조각은 화석이 된 공룡의 뼈였을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것을 그저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고 아는 척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저자의 인용에 의문이 가는 점도 몇 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증국번은 한 연회에서 마장(馬掌)이라는 게이샤로부터 부탁을 받아 그녀의 이름으로 대련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160쪽)”고 적었는데 과문한 탓에 중국에도 ‘게이샤’라고 부르는 직종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하여 등 뒤의 위험을 모른다(螳螂捕蟬黃雀在后; 당랑포선 황작재후)에서 춘추시대 오나라 왕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어느 왕인지도 분명히 밝히지 않았을 뿐더러 어린 아들이 왕의 초나라 정벌을 말리기 위하여 (螳螂捕蟬黃雀在后)의 고사를 들어 왕을 설득했다는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왕의 측근의 아들이 혼자서 왕의 정원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법고(法古)할 길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역시 힘이 들더라도 <논어>, <장자>, <맹자>를 읽고 뜻을 제대로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학문에 왕도는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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