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예술 -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심보선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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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제목의 의미를 챙겨 읽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을린 예술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나는 삶 속에서 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을 ‘그을린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때의 예술은 순수한 예술, 자율적 예술, 천재라 불리는 예외적 개인의 예술, 지상에 떨어진 타락한 천사의 예술, 진리를 선포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선지자적 예술이 아니다. 단언컨대 그런 예술은 죽었다. (…) 그을린 예술은 타들어 가고 부스러지는 현대인의 삶, 자본주의의 격렬하고 성마른 불길에 사로잡힌 우리네 삶 가운데서 꿈틀거리는 꿈, 긍정성의 몸짓, 유토피아적 충동이다. 그러므로 그을린 예술은 언제나 위기에 직면해 있다(14쪽).”

 

저자는 순수예술을 스노비즘의 표상으로 길가름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소노비즘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출신이나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고상한 체하는 성질. 금전이나 영예 등 눈앞의 이익에만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유의로 안내하고 있는 속물근성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피부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속물근성이라고 적었더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작가는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삶을 재창조하려 하는 예술의 모습들’을 담고자 하였다고 했습니다만, 여기 담은 글들은 미리 기획하고 쓴 글이 아니라 저자가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발표한 글들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인용하는 에피소드가 중복되는 경우도 눈에 띄었고, 다섯 부로 나누어진 글들은 독립적으로 읽어도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을 듯합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서 말한다면, 나는 이 책이 하나의 선언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선언은 다음과 같다.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다른 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삶 속에서, 삶의 불길에 그을린 채.(15쪽)”라고 적은 것처럼, 대중과 괴리를 보이는 순수예술을 지양하고 민중과 같이 숨쉬는 예술이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고 읽었습니다.

 

역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사회학자가 지켜야 할 금도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는 세계와 인간과 거리를 둔다. 사회학자는 자신을 구속하는 구조에 맞서는 인간들의 눈물, 탄식, 분노, 기쁨, 경탄, 동경, 희망에 참여하지 않는다. 사회학자는 인간이 꾸는 꿈, 오류와 과장이 가득한 그 유토피아적 충동을 해석할지언정 그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려 한다.(11쪽)”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사회학적 계보에 충실했다고 말씀하고는 계시지만, 글 내용으로 보면 과연 그러한가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6.9 작가선언’은 이명박 정권하의 한국 사회를 ‘민족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로 명명하면서, ‘지금 바로 여기’가 전쟁 상태이며 적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81쪽)”고 했는데, 이어서 “‘6.9 작가선언’이 한국 사회를 아우슈비츠로 명명한 것이 현실과 부합하는가, 혹은 적절한 문학적 비유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라는 용어의 의미, 혹은 무의미성은 그것이 가지는 효율성이나 호소력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83쪽)”라고 적고 있어 과연 논리적인가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되는 용산참사에 관한 글에서 “일반적인 유가족들이 으레 있어야 할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그들은 실은 어떤 유가족들보다도 더한 슬픔에 처한 상태로 살아간다.(94쪽)”고 적었지만, 같이 한 사진은 저자의 간절한 마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사고가 있기 오래 전에 집을 구하려 그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재개발을 반대하는 시위를 바라보면서 걸음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곳에서 살게 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저자는 일상적 삶에서 예술이라는 무엇을 창조해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하고, 누구나 생각보다는 조금은 위대해질 수 있는 구체적 계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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