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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상 ㅣ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2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04741>이 계기가 되어 요즈음 여행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어쩌면 멋진 여행기를 한편 써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고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장거리 여행을 몇 차례 다녀오면서 여행에서 얻은 느낌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챙길 수 없어 그때 적은 여행기는 아직도 파일함에 감추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외국에라도 갈라치면 출발 전 준비과정부터 다녀와서 마무리할 때까지 전과정을 촘촘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도 읽는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 맛갈나는 여행기 쓰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결국은 그런 이유로 읽게 되었습니다만, 도서목록에 올려진 것은 저의 또 다른 관심사인 ‘눈물’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박지원의 산문을 새롭게 조명한 주영숙님의 책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20858>에서 조선 남자의 눈물에 대한 연암의 열린 생각의 단편을 소개한 것을 읽고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면서 시작하는 <열하일기>에서, 7월 8일 요양의 백탑이 모습을 드러내는 산모롱이에 막 벗어난 연암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135쪽)”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툭 트인 경계를 보고 별안간 통곡을 생각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연암의 독특한 울음론이 이어집니다. 울음이란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슬플 때만 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갓난 아이가 태어날 때 우는 것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을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오니 참으로 시원한 마음이 들어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한번 펼쳐내는 것이라고 해석한 연암은 그런 이유로 갓난아이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만경평야를 제외하고는 지평선을 볼 수 없는 좁은 우리나라 땅에 갇혀 살던 연암이 광활한 요동땅을 처음 보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울음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적었을 것입니다.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꽤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136쪽)”
연암은 명나라와의 관계에 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봉황성에서는 벽돌을 구워 집과 성을 쌓은 모습을 보고서 돌로 쌓은 우리나라의 성과 비교하여 장단점을 논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문의 누각을 세우는 공사에서 사용하는 거중기의 모습을 신기하게 보면서 이를 창졸간에 배울 수 없는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거중기가 실용화된 것은 연암이 연경에 다녀온 것보다 조금 뒤가 되는 1792년 정조대왕이 다산 정약용에게 청에서 들여온 ‘기기도설’을 내어주면서 방책을 강구하라 하셨고, 다산은 신형 거중기를 제작하여 공사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니 불과 10여년 안팎의 일입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일은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저 산천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여행의 가치가 작다할 수는 없겠지만,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무엇을 챙길 수 있다면 여행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하겠습니다. 특히 다양한 그림자료들을 풍부하게 곁들이고 있어 연암이 보고 들은 것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