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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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저의 선생님께서는 공부하는 동안 미국을 두루 돌아보라고 권하셨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미국인을 이해하려면 그만큼 그들의 삶을 겪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유명하다는 곳을 구경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따로 다녀가려면 부담이 적지 않겠다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소는 물론 그곳으로 가는 길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자잘한 장소까지도 두루 섭렵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 때마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기 마련이고, 요즘 젊은이들 용어로 인증샷 찍고 바람같이 다음 장소로 달려가는 주마간산식의 여행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운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하는 운전이었는데도, 하루 평균 500마일을 이동해야 했고, 하루에 1200마일을 운전했던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여행이다 보니 공들여서 일정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일단 여행 장소와 일정이 결정되면 놓치지 말고 구경해야 하는 장소에 대한 정보를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들을 최대한으로 엮어서 여행코스를 정하고, 구경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서 하루 단위로 나누는 작업을 합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여행기간 동안 사고 없이 계획된 일정에 맞추어 이동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에 여행하는 일보다는 여행을 계획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한 곳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여행을 통해서 저나 가족들이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싶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들 그리고 처가식구들을 한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미국의 명소로 안내했다는 자기만족을 빼고 나면 명소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메모해두었다가 저녁에 숙소를 정하면 그런 느낌들이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정리하기는 했습니다만, 간략하기만 하고 건조한 느낌으로 가득한 글만 남았습니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에 대하여;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86857>를 읽으면서 강한 인상이 남았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진즉 읽었더라면 미국에서의 여행이 실속과 의미를 더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The art of travel’입니다. 흔히 ‘art’를 예술 혹은 미술로 이해하게 됩니다만, 영한사전에는 ‘기술, 기교, 재주, 기예, 방법’ 등의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행의 기술>이라는 제목이 전혀 생뚱맞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무언지 모르게 건조하고 가벼워 보이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을 <사랑의 기술>로 번역한 이래 생긴 관성효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뭐 원제목에 담겨 있을 예술적인 느낌을 살리는 우리말은 무엇이 있을까요?

 

알랭 드 보통이 소개하는 여행을 잘 하는 기술을 소개해 드리기 전에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점을 먼저 짚어보려고 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바베이도스, 마드리드, 시나이 사막, 프로방스, 레이크 디스트릭트, 암스테르담 등의 여행을 통하여 느낀 점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에 맞게 여행의 느낌을 나누고 있는데, 바베이도스로 출발해서 바베이도스에서 귀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먼 곳에 다녀오기 위해서 공항을 이용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출발할 때와 도착할 때 이용하는 공항에서 떠오르는 느낌도 다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어떻든 여행을 하게 되면, 동기가 있을 것이고, 여행지의 풍경을 구경하게 되고, 특히 방문한 장소에 박물관과 같은 예술품을 감상할 기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출발한 장소로 돌아오게 되겠죠.

 

여행에 관한 이 책의 독특한 서술구조를 먼저 적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아홉 꼭지로 나뉘어 있는 여행에 관한 작가의 서술은 자신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그가 소위 안내자로 지목하고 있는 사람과 관련된 여행 이야기가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동기’편에 나오는 이야기 ‘호기심에 대하여’에서는 저자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마드리드를 방문하는 여행을 알렉산더 훔볼트라는 이름의 스물아홉 살 난 독일인 안내한다고 요약되어 있습니다. 생물학, 지리학, 화학, 물리학, 역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훔볼트가 1799년 떠난 남아메리카 탐험여행의 기록을 요약하면서 자신의 마드리드 여행을 버무려 놓고 있는 것입니다.

 

“훔볼트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해발 5,076미터인데도 눈 위로 바위 이끼가 보였다. 이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0미터 정도 아래서였다. 봉플랑 씨[훔볼트의 동행자]는 해발 4,500미터에서 나비를 한 마리 잡았으며, 거기에서 500미터를 더 올라가서도 파리를 볼 수 있었다.’(153쪽)”라는 인용만 보더라도 훔볼트의 남아메리카 탐험여행은 놀라운 것입니다. 물론 탐험여행이라고는 하지만 훔볼트의 뛰어난 관찰력과 관찰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은 그가 박물학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 여기에서 작가는 마드리드 탐험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당시 마드리드에 관한 측정치는 모두 알려져 있던 것이라고 눙치면서, 정작 마드리드에서 느낀 점은 내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는 관찰력과 관찰한 내용을 환상적인 글로 옮기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다른 여행이야기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마드리드의 호텔 근처 공터에 서있는 건물들 사이로 돌아가는 고속열차의 움직임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안에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부엌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열차 안의 많지 않은 승객들은 뿔뿔이 흩어져 바깥의 도시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신문을 읽고 있었다. (…) 승객과 아파트 거주자들은 서로에게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서로 만나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궁상맞은 호텔을 피하고 싶어 산책에 나선 관찰자의 망막에서만 짧은 순간 만났을 뿐이다.(273쪽)”


작가는 과거에 살았던 다양한 안내자의 여행을 통하여 뽑은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윌리엄 워즈워스가 태어나고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찾았을 때, 워즈워스가 이곳을 산책하면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담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의 시인들이 시의 소재가 되는 자연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의식(儀式)의 틀 내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워즈워스는 자연현상이야 말로 고귀한 시재(詩材)가 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워즈워스는 여름이 지난 뒤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느낀 기쁨을 “오, 나이팅게일이여! 그대는 진정 / 불의 심장을 가진 생물이로다……. / 그대는 마치 포도주의 신 덕분에 발렌타인 같은 순교자라도 된 듯이 노래하는구나.”라고 적은 것에 대하여 작가는 “이런 시들은 아무렇게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 배후에는 자연에 대한 심오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175쪽)”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2월부터 정착해서 작품 활동을 했던 프로방스를 찾았을 때는, “그해 겨울 파리에서 아를로 오면서 얼마나 마음이 들떴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236쪽)”는 고흐의 회고담을 인용하고, 고흐의 그림을 통하여 프로방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반 고흐가 없었다면 올리브 나무 역시 지금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전날 내 눈에 띄었던 올리브 숲을 땅딸막한 덤불로 치부해버렸다.(248쪽)”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작가의 프로방스 여행기에는 흑백사진이라서 많이 아쉽습니다만, 고흐가 프로방스에서그린 많은 작품들을 인용하여 독자들이 작가의 느낌에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일단 아름다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면, 예술 작품은 자잘한 방식으로 우리가 여행하고 싶은 곳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236쪽)”고 적은 것처럼 문학 혹은 예술과 관련된 장소를 여행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게 됩니다. 아마도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을 나중에 다시 회상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카메라가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림에 조예가 있는 분이라면 그림으로 남겼을 것이고, 글쓰기에 조예가 있는 분이라면 글로 남기려 했을 것입니다. 물론 고려말 시인이자 문장가 김항원이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 풍광을 돌아보고, 부벽루에 걸려 있는 다른 이들의 시가 감동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뜯어냈지만 막상 자신의 느낀 감동을 글로 적으려니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이라고 점을 찍고 말았다는 고사(古事)처럼 글로 옮기기에 너무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네 선조들은 자연을 유람하면서 느낀 감동을 유기(遊記)라는 장르의 글로 남겨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그때의 감동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나종면 지음, 선비를 따라 산을 오르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37235)

 

작가 역시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을 붙드는 방법은 19세기 말 런던에서 태어나 사람들에게 데생을 가르쳤던 존 러스킨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7쪽)”라고 하였습니다.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을 연습할 가치가 있는 것은 데생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풀밭에 누워 자라는 풀잎을 그리곤 했다. 초원의 구석구석, 또는 이끼 낀 강둑이 나의 소유가 될 때까지.(283쪽)”라는 러스킨의 말을 듣고 보면, 데생은 분명 사진과 차원에서 자연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가 하면 러스킨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와 같은 여행자들의 맹목과 성급함에 개탄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으면서 본다고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281쪽)

 

러스킨은 또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는 것에 더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을 굳히려면 “말로 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글로 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러스킨이 말하는 ‘말 그림’은 어떤 장소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심리학적 언어로 그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합니다. 러스킨이 알프스에서 만난 소나무와 바위를 묘사한 글을 소개합니다. “알프스 절벽 밑에서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노라면 오래지 않아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소나무들은 사람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의 돌출부나 위험한 바위 턱에 고요히 모여 있는데, 각기 옆에 있는 나무의 그림자 같다.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서로를 알지 못한다.(296쪽)”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말 그림’을 그려내려면 평소 주변을 잘 관찰하고 묘사하는 연습을 꾸준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저의 여행 패턴을 바꾸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작가의 의도대로 여행하는 방법을 개선하는 방향에 무게는 두는 책읽기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같은 책을 읽은 장성주님의 경우는 “여행은 장소들의 숭고함을 들이키는 문화적 행위이다”라고 정의하고 자연이 품고 있는 숭고함을 깨닫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읽어(장석주 지음, 일상의 인문학), 저와는 차원 다른 책읽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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