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
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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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진화는, 상상 가능한 이론적 구성물 가운데에는 어떤 경우에서나 다른 구성물에 대해 결정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구성물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문제에 대해 천착했던 사람들은 우리의 지각세계가,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어떠한 이론적 체계를 선택해야 할지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의 모든 원리로 이끄는 논리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에 대하여 과학의 대표적 분야인 물리학의 한계에 대하여 1918년 막스 프랑크의 회갑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입니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인용) 가세트는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흥성으로 퇴조되고 있는 철학이 본연의 소명으로 회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과학적 진리는 비록 정확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이며 완전한 진리는 아니다.’라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유와 존재의 상호 동화라고 정의되고 인식의 영역에 속하는 도덕적 진리를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는 없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64786>를 통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을 설파한 샘 해리스박사는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에서 발전된 뇌과학의 증거들은 도덕적 진리를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과학은 사실에 관한 것이지 규범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양태에 대해 무엇이 잘못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 인간의 조건에 관한 과학은 있을 수 없다.(23쪽)”고 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제리 포더와 같이 반대하는 과학자들이 여전히 있는데도 말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연구결과를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도덕과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도덕과 행복에 관한 과학적 연구에서 얻어진 것들을 도덕적 진리, 선과 악, 믿음, 종교, 행복의 미래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원저의 제목이기도 한 ‘도덕의 풍경(The moral landscap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도덕의 풍경은 “가설적 공간이지만 실제적, 잠재적 결과의 공간으로, 봉우리의 높이는 잠재적 행복의 높이에 해당하고, 계곡의 깊이는 잠재적 고통의 크기에 해당한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 즉 다양한 문화적 관습, 윤리 규정, 정부의 양태 등은 이 풍경에서 지점 사이의 좌표이동으로 표현되고, 이것은 또한 인간 번영의 정도 차이로 나타난다.(17-18쪽)”라고 설명되고 있는데, 다양한 변수를 데이터화하여 객관적으로 평가가 가능한 삼차원공간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우리가 높은 산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다양한 높이의 산들이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덕적 가치 또한 하나의 정답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도덕적 진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에 이와 같은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의 결과의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을 ‘스리마일 섬 효과’로 설명기도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스리마일섬은 1979년 일어난 원자로 노심 용융사고로 세인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나쁜 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어 보면, 이 사고를 통하여 각국은 핵안전을 보다 강화하는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하게 되었고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83563>를 읽으면서 ‘문화를 전달하고 모방하는 복제단위’를 밈(meme)이라고 정의하고 “밈풀에서 펴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323쪽)”라는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생물의 진화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개체와 이타적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균형을 이루어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당 생물집단의 생존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킨스가 주장하는 밈이라고 하는 문화의 복제단위는 생존에 긍정적 요소만이 살아남고 부정적 요소는 소멸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샘 해리스는 밈의 존재를 인정하고 밈이 ‘전달된다’며, 숙주로 삼은 인간의 생식세포를 통해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밈의 생존은 개인이나 집단에 실질적인 이익(번식되느냐 아니냐)을 가져다주느냐 아니냐에 좌우되지 않는다. 수 세기 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의 행복을 저하시키는 개념이나 문화적 산물에 매여 사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37쪽)”고 밈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파푸어 뉴기니 하이랜드 지역에 사는 포레(Fore)족의 생존을 위협했던 쿠루(kuru)병의 확산과 소멸을 샘 해리스의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쿠루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의 습속이 포레족 마을에 들어온 이후에 새로 생겼다가 쿠루병의 정체가 드러남에 따라 호주 정부가 카니발리즘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소멸되어 갔던 대표적인 프리온질병입니다. 즉 카니발리즘이라고 하는 문화적 요인의 유입과 정착이 종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정적 방향으로 작용하는 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소위 밈이라고 하는 사회문화적 복제단위가 믿음이라고 하는 집단의 사고결과로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것이며, 집단적 행복추구를 위한 문화적 행동양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예로 든 포레족의 사례처럼 어떤 종족이나 사회가 품은 실재에 대한 믿음이 허위일 뿐만 아니라 명백하게 해로울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진화론이 생물학적 명령으로서 이기심을 수반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부분에서 해석의 오류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수준에서의 선택압력은 개인의 생존보다는 혈연관계가 있는 존재들을 위한 희생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생존보다 유전자를 공유하는 존재들의 생존이 유전자집단의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선택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론이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의 호혜적 이타주의이론입니다. 혈연관계가 없는 친구들이나 심지어 요즈음 개그콘서트에서 보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보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협동이 가능한 이유가 설명되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개인과 집단의 행복의 지침이 되는 도덕이 분석범위에 있다는 가정을 다음처럼 요약하고 있습니다. “1. 뇌의 유전자 변화는 사회적 감정, 도덕적 직관, 언어 등을 발생시켰고, 2. 이로 인해 약속이나 명예 중시 등 점점 복잡한 협동 행동이 가능해졌으며, 3. 이러한 행동은 또 문화적 규범, 법, 사회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이들의 목적은 점점 발전하는 이 협동 체제가 그것을 상쇄시키는 힘에 맞닥뜨렸을 때에도 지속되게 하기 위함이다.(113쪽)” 물론 잘못된 믿음에 의하여 퇴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유전자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 이론은 문화의 복제단위가 밈이라고 하는 가설적 구조가 아니라 유전자라고 하는 실재적 구조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제로 뇌연구 결과 도덕적 인지와 관련된 뇌영역으로는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과 측두엽(temporal lobe)의 많은 부분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전두엽 외측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전두엽 내측은 신뢰 및 상호성과 관련된 보상의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뇌과학자 조르주 몰과 리카르도 데 올리베이라-수자 등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포유동물에서는 볼 수 없고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행위, “다른 사람에게 이로우면서 내게 직접적인 이익(물질적 혹은 명예에 대한 이익)이 없는 행위(진정한 이타주의)를, 특히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에도 뇌의 보상영역이 급격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161쪽)

 

내측전전두피질(MPFC)이 믿음을 담당하는 뇌부위로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MPFC는 자기표현과 관련되어 있는데, 남을 생각할 때보다 자신을 생각할 때 MPFC의 활성이 커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MPFC의 활성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는 ‘어떤 명제를 참이라고 믿는 것은 마치 그 명제를 확장된 자아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가 종교적 믿음과 관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활성이 높은 형태의 D4 수용체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회의적이고 기적을 믿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종교의 종류와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 공존할 수 없다며 극한 대결을 불사하는 종교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삶의 의미와 도덕 지침의 원천으로 믿을 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신을 믿는 가장 흔한 이유라고 합니다.(17쪽)”

 

이 처럼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종교적 믿음의 본질이 베일을 벗어가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공론화하는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 공동체가 대체적으로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데도 불구하고 종교적 독단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국립과학원, 국립보건원과 같이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관, 심지어는 네이처와 같은 과학 잡지까지도 종교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티븐 굴드의 ‘중복되지 않는 권위’ 개념, 즉 ‘과학과 종교는 전문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두 분야가 적절하게 관점을 규정하면 갈등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학은 물리적 우주의 작동에, 종교는 의미, 가치, 도덕, 선한 삶에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뜻이 담겨 있다.(16쪽)”고 양해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도덕문제에서 신앙과 이성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보는 저자의 경우에도 막상 공적 담론에서 과학의 역할에 대하여 논의할 때는 어떠한 경우라도 종교적 의견이라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혼란과 박해로 어두웠던 수 세기, 즉 종교적 암흑기를 지나 과학이 꽃을 피우게 된 지금에도 종교는 여전히 과학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서구에서 광신도의 손에 고문이나 살해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지만, 미국에서는 종교에 공격적 태도를 취했다가는 연구비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42쪽)”는 인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우주를 선으로 이끄는 위대한 힘이자, 우주를 악으로부터 지키는 진정 유일한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가톨릭교회의 본산 로마 교황청이 사제가 되려는 여성을 파면하면서도 어린이를 강간한 남성사제는 파면시키지 않는다거나, 여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낙태를 시행한 의사를 파면시키면서도 인종 학살을 자행한 나치당원은 단 한 명도 파면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도덕에 대한 교회의 판단기준은 혼란스러운 것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존재의 가장 절박한 문제에 관해 과학을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즉 도덕적 믿음도 과학적 믿음과 같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게 될 것임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도덕적 믿음을 지켜온 종교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저자의 이런 견해가 옮긴이의 생각으로 걸러져 전달된 점은 없었는가 하는 우려입니다. 옮긴이의 글에 적고 있는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이 책은 주로 종교에 대한 반대로 종교가 도덕을 말할 수 없고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독단에 가까운’ 강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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