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작소설을 새롭게 해석한 영화를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의 불후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76051>는 2007년에 <톱 텐>이라는 책에서 발표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 순위에서 당당 1위를 차지한 까닭인지,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화 된 바 있습니다. <톱 텐>의 순위는 영국, 미국, 호주의 유명작가 125명이 뽑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문학작품 10권을 종합한 것이었으니 아무래도 전문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개봉된 <안나 카레니나>는 조 라이트 감독 작품으로 키이라 나이틀리(안나 카레니나 역), 주드 로(알렉시 카레닌 역), 애론 테일러-존슨(브론스키 역), 돔네일 글리슨(레빈 역), 그리고 알리시아 빈칸데르(키티 역) 등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영화의 틀을 깨트리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플로시니엄에서 연기하는 장면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기법을 적용한 것인데, 단순히 플로시니엄으로 국한되지 않고, 플로시니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이 배우들의 연기공간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무대에서 퇴장한 배우가 무대장치 등을 조정하기 위하여 무대 위 공간에 설치된 비계로 이동하여 다른 장면으로 연결시킨다거나, 퇴장한 배우가 대기실을 통하여 연결된 회랑을 따라서 무도회장으로 이동하는 등입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다중의 공간으로 변형되기 때문에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숨가쁘게 배우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대가 경마장의 관중석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무대 뒤 공간이 마차가 질주하는 거리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귀족사회가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에 화려한 모습의 연극무대가 제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레빈으로 상징되는 러시아 농민들의 세계는 열린 공간의 현장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리얼리티를 살리는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 원작의 <안나 카레니나>의 원작을 읽고서 브론스키를 매개로 하여 카레닌-안나 부부, 레빈-키티 부부의 상반된 사랑의 행로를 대비시키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는 순간 마음을 빼앗긴 안나가 고위관료인 남편과 8살 된 아들을 버리고 브론스키와 불륜의 관계에 빠지고 카레닌에게 이혼을 요구하다가 결국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리는 과정에서 카레닌은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여 안나와 브론스키가 세인의 주목을 끌지 않는다면 눈감아 주겠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세인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는 행동을 보인 끝에 카레닌의 분노를 사고 말아 결국은 “복수는 내가 하리라, 내 이를 보복하리”라는 결말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원작을 보면 당시 러시아 사교계에서도 비밀리에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는 것인데, 안나-브론스키 커플이 파경에 이르게 된 것은 자신들의 사랑을 드러내고 인정받겠다는 두 사람의 도전정신이 사교계의 일반적 정서에 반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브론스키를 완전하게 소유하려는 안나의 끝없는 욕심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파멸에 이르게 되는데... 

 

톨스토이의 원작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화르르 타버리는 불꽃같은 사랑과 브론스키에 팔려 레빈의 청혼을 거절했던 키티가 안나에게 빠진 브론스키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문 다음에 레빈의 사랑이 진실함을 깨닫게 되면서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성적인 레빈의 사랑이 때로는 편집증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키티의 원만한 대응으로 이들의 사랑은 원만하게 무르익어가는 것으로 안나-브론스키의 정열적인 사랑과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안나의 불꽃같은 사랑이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과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레빈과 키티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새겨볼 수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1796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원작에서 영화의 스토리전개에 꼭 필요한 장면을 원작에서 추출했다고는 하지만 등장인물의 행동 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생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를 우리가 흔히 보는 막장드라마 수준으로 이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원작을 읽으면 등장인물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부의 고위관료인 카레닌과 브론스키 사이에서 안나가 갈등을 보이다가 결국은 브론스키로 기울게 되는 것은 카레닌이 안나보다 스무 살이나 연상이라는 점도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카레닌과 브론스키 사이에서 안나의 생각이 여러 번 바뀌게 되는게, 첫 번째 변곡점은 안나가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출산하는 시점입니다. 안나와 이혼을 결심한 카레닌이 모스크바에서 머물고 있을 때, 안나로부터 돌아와 달라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출산과정에서 얻은 산욕열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된 안나가 죽음을 앞두고 카레닌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쓸 무렵 만해도 산욕열에 걸리면 백명 가운데 아흔 아홉 명은 죽는 치명적 부작용이었습니다.

 

출산이나 유산을 한 뒤 첫 10일 동안 38℃ 이상 되는 열이 있는 경우에 산욕열을 의심하게 됩니다. 분만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의 생식기계통에 많은 손상을 입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세균감염이 일어나게 되면 골반염, 복막염 나아가서는 패혈증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세균이 감염병을 일으킨다거나 소독법으로 감염을 줄일 수 있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출산은 죽으러 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헝가리 출신 산과의사 젬멜바이스가 산욕열이 분만의사의 위생상태에 따라서 생긴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소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서야 산욕열이 줄어들게 되었고, 항생제의 발견은 산욕열에 희생되는 산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기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젬멜바이스가 산욕열의 정체와 예방법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맞는 불행한 인생행로는 핼 핼먼이 쓴 <의사들의 전쟁; http://blog.joinsmsn.com/yang412/5157822>에서 상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산욕열이 그만큼 무서운 병이었기 때문에 안나는 자신의 잘못된 사랑으로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브론스키와 이별하는 조건으로 카레닌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안나의 생명을 그 사랑만큼이나 끈질겼던지 산욕열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안나와의 이별을 이겨내지 못한 브론스키가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이 다시 안나의 생각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입니다만, 톨스토이 원작에서는 레빈의 형 니콜라이가 결핵으로 죽음을 맞는 장면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받은 레빈은 형을 만나러 모스크바로 가게 되면서 키티에게는 영지에 머물도록 요구하지만 키티는 레빈과 동행하여 모스크바의 호텔로 가서 니콜라이를 헌신적으로 간병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레빈의 마음을 감싸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키티에 대한 레빈의 사랑이 한층 깊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환자는 홀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특히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죽어가는 니콜라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키티의 특별한 능력이 영화에서는 병든 형이 레빈의 영지로 찾아와 죽음을 맞기까지 과정을 짧은 에피소드로 처리하고 있어 이 장면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해졌을까 싶기도 합니다.

 

폐결핵은 초기에는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습니다만, 병이 진행함에 따라 권태감, 미열, 식은 땀, 기침, 가래 등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폐결핵의 진단은 흉부엑스선검사와 객담에서 결핵균을 검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하여 조기에 진단을 하고 집중적인 약물치료로 완치가 가능한 전염병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리를 하면, 조 라이트 감독은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의 위험하고도 절절한 사랑에 집중하는 대신,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며 개인을 파멸의 길로 내모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의미를 깊이 파고든 원작자 톨스토이의 의도를 되새겨볼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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