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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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아직 읽어보지 못한 고전인 경우 꼭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책이었던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아주 인상적으로 인용한 책을 읽었기에 필독 도서목록의 위쪽에 올려 두었습니다.

 

오래 벼르던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조만간 새로 만들어진 영화 <안나 카레니나>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챙기는 것은 지난 해 뮤지컬 <레 미제라블;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72541>을 보면서 느낀 아쉬움 때문입니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제한된 시간으로 압축을 하다 보니 생략된 부분이 많은 탓에 등장인물의 성격, 심리상태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스토리 뒤쫓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영화로 만난 <레 미제라블;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39357>은 원작을 이미 읽은 다음이어서 배우들의 연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1873년 집필에 착수하여 1978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연진희 번역본은 모두 8부로 구성된 이야기를 세권으로 나누고 있는데 막상 읽다보니 네 권으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각부의 분량이 서로 다른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8부 까지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을 각각 두 개씩 묶어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었더라면 지나치게 두껍다는 느낌도 줄이고 스토리 전개를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작품해설에서 밝힌 것처럼 8부에 등장하는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은 구상단계에서 미처 고려되지 않았던 사건이라서 안나의 죽음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다소 장황하게 바뀐 것일 수 있겠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연장방영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를 고리로 한 카레닌과 브론스키의 삼각관계가 이야기의 한축을 이끌고, 한때 브론스키를 동경했던 키티가 결국 레빈을 선택하고 그들의 사랑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의 다른 한축으로 하여 다른 색깔을 가진 두 개의 사랑을 대비시켜 신의 섭리에 의한 최고의 선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스무살 연상의 카레닌과의 사이에 아들을 두고 있는 안나가 브론스키와 만나면서 서로 한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의 사랑은 한때의 들뜬 감정으로 정리되지 못하여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브론스키를 따라 집을 떠나게 됩니다. 안나를 둘러싼 이들의 운명과 같은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들지만, 브론스키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독점하려는 안나의 중독된 사랑은 브론스키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은 열차에 몸을 던져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결국 안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불같은 사랑을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키티와 레빈의 사랑은 브론스키에 눈이 팔려있던 키티가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는 바람에 시작부터 중대한 위기를 맞지만, 키티와의 관계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던 브론스키가 안나를 선택하면서 키티를 버리는 바람에 키티는 실연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언니 돌리와 형부 스티바의 주선으로 레빈은 키티에게 다시 청혼을 하게 되고 두 사람은 결혼으로 맺어지는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레빈의 성격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두 사람의 관계도 갈등을 빚곤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부딪히는 상황이 생기면 문제를 서로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같이 찾으려 노력하는 점이 안나의 치명적 사랑과의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사랑이야기로 끝났다면 <안나 카레니나>가 명작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작품해설에서 보면, 2007년에 발표된 <톱 텐>이라는 책에는 영국, 미국, 호주의 유명작가 125명에게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문학작품 10권을 꼽아달라 해서 순위를 매겼는데 <안나 카레니나>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저의 눈을 끌었던 점을 몇 가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의 행동과 내면의 생각을 제3의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등장인물의 행동을 그 주변상황까지 포괄하는 넓은 시각에서 서술하고 그 사람의 내면의 생각으로 까지 접근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자신의 시각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등장인물이 자신의 정신마저도 자신의 의지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의식의 흐름’에 스스로를 내맡기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의식의 흐름’기법은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등 20세기 작가들에게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안나가 오빠 스티바의 외도로 갈등을 빚고 있는 올케 돌리를 달래기 위하여 모스크바를 찾았을 때, 정거장에서 처음 만난 브론스키와 심상치 않은 감정이 오가는 것을 느끼고 일정을 바꾸어 페테르부르그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모든 것이 좋았고 유쾌했다. 그녀는 무도회를 떠올리고, 브론스키를 떠올리고, 사랑에 빠진 그의 순종적인 얼굴을 떠올리고, 그와의 모든 관계를 떠올렸다. 수치스러워할 만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바로 이 부분의 기억에서 수치심은 더욱 강해졌다. 그녀가 브론스키를 떠올린 순간, 마치 어떤 내면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따뜻해. 아주 따뜻해. 타는 듯이 뜨거워’. (…) ‘과연 나와 저 풋내기 장교 사이에 단순한 지인 관계를 뛰어넘은 어떤 다른 관계가 있다는 건가? 아니 그런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안나카레리나 1권 223쪽)”

 

두 번째 눈에 띄는 점은 <안나 카레니나>는 1873년 집필을 시작하여 1878 출간한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 귀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당시 귀족들이 모이는 사교계가 무대가 되고 있음에도 사교계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파리를 비롯하여 지방의 사교계 모임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다만 오페라 혹은 사냥 등과 같이 러시아 귀족들의 취미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러시아귀족회의의 회장을 선거하는 과정이라거나 귀족들의 수입을 결정하는 직장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러시아 사회의 혼탁한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지에서의 레빈의 생활을 통하여 당시 러시아 농부들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점은 새겨 읽을 만합니다. 포크로프스코에 있는 영지에서 직접 풀베기를 하고 양봉을 하는 레빈의 모습은 톨스토이가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서의 생활하는 모습 그대로라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는 농노를 써서 운영하는 장원체계가 무너지는 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출을 늘릴 수 있는 농기계의 활용과 같은 새로운 영농기술의 도입에 미지근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얻게 됩니다. “농부들은 자기들에게 어떤 새로운 농사방법이나 새로운 농기구의 사용도 강요하지 않을 것을 모든 계약의 으뜸가는 절대조건으로 내세웠다.(안나 카레니나 2권 225쪽)” 시골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들 역시 옛날식으로 집사에게 영지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주로 모스크바와 같은 대도시에서 무계획하게 지내다가 돈이 떨어지면 영지를 팔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현지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바람에 손해를 입어도 알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럽의 변방에 위치하다보니 뒤늦게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1부에서부터 죽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조우하는 기차역에서 경비원이 선로를 바꾸는 기차에 치여 죽는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아, 정말 끔찍해! 아, 안나, 네가 그 모습을 봤더라면! 아, 소름끼쳐!”라고 탄식하는 오빠 스티바의 이야기를 듣게 된 안나는 입술을 떨고 가까스로 눈물을 참는 모습으로 “불길한 징조예요.(안나 카레니나 1권 145쪽)”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앞날을 예견했던 것일까요? 슬픈 엔딩의 전조로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이에 가진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산욕열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이릅니다. 당시만 해도 산욕열에 걸리면 백명 가운데 아흔 아홉 명은 죽는 치명적 부작용이었습니다. 안나가 투병하는 동안 카레닌은 증오를 접고 브론스키와 안나를 용서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 카레닌의 마음이 통했을까요? 안나는 산욕열을 이겨내게 되는데, 이번에는 브론스키가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하게 되고 남편에게 기울던 안나의 마음이 다시 브론스키에게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5부에서는 특별한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 1부에서 8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239개의 장으로 구성된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 가운에 유일하게 5부의 제20장은 ‘죽음’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레빈의 친형 니콜라이가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집에서 기다리라는 레빈의 말에 따르지 않고 동행한 키티가 니콜라이를 간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레빈은 진한 감동과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니콜라이가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현대과학의 영향으로 신앙을 부정하게 된 레빈은 ‘당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 남자를 낫게 해주십시오. 그럼 당신은 그와 나를 구원할 것입니다.(안나 카레니나 2권 553쪽)“라고 기원하지만 니콜라이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니콜라이의 죽음은 레빈을 사로잡았던 불가해함에 대한 공포, 즉 죽음의 접근과 불가피함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되지만 키티의 존재가 레빈을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7부의 마지막에 만나는 안나의 죽음입니다. 남편 카레닌과 결별을 하고 브론스키와 같이 떠난 안나는 남편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아서 브론스키와 재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사교계에서도 추방당하는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안나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브론스키마저 자신에게 집착하는 듯한 안나를 달래지 않고 외면하면서 안나는 죽음이 유혹에 강하게 이끌리게 됩니다. 결국 브론스키를 만나기 위하여 기차여행을 하는 안나는 기차역에서 받은 브론스키의 쪽지를 읽고 그녀의 마음을 가냘프게 지탱하던 믿음의 끈을 놓고 죽음을 선택하게 됩니다. 산욕열을 앓을 무렵 ‘왜 나는 죽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 안나는 그녀의 영혼 속에 있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 죽는거야…!’ 하지만 막상 기차에 끌려가면서 그녀는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라고 독백을 합니다.

 

거울의 이미지처럼 안나의 대칭점에 서있는 레빈 역시 여러 차례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생사문제를 고민하게 된 레빈이 “죽음보다 오히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것이 무언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생명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497쪽)”고 작가는 적고 있습니다. 레빈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종속을 끊는 방법은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키티의 출산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기도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내면서 그리스도교가 준 영적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교를 넘어 불교, 혹은 마호메트교로도 확대하여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8부에서 전개되는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에 일어난 일종의 종교전쟁이 작가의 이런 생각에 기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작가는 신의 존재와 신의 섭리에 의한 최고의 선의 의미를 독자들이 깨닫기를 희망하였다고 정리해봅니다.

 

1796쪽이나 되는 대작이다 보니 리뷰가 길어졌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의미를 어떻게 살리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안나 카레니나(전 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1권 520쪽, 2권 668쪽, 3권 608쪽

2009년 9월 4일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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