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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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한국 추리소설을 읽었습니다. 신촌의 어느 샛길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번호판을 단 외교차량을 세우고 음주측정을 요구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작가가 소개하는 프롤로그에서는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갈지 감조차도 세워지지 않는 막연한 느낌을 받습니다. 홍콩모텔이라는 제목의 1부, 민주일보라는 2부, 원더랜드라는 3부의 제목 역시 상황이 전개되는 장소일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더욱이 1부를 시작하는 작은 제목의 이름은 ‘B파일 397021 은행원’입니다. ‘도대체 뭐야?’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1부 제목이기도 한 홍콩모텔의 한 방에서 은행원 조선족출신 리영민이 지독한 숙취 속에서 눈을 뜨고 이미 죽어있는 여성과 함께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깨닫는 끔찍한 상황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어 갑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미스테리의 그물을 엮어 사건을 얽어내기에는 아무래도 긴장의 강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듯, 민주일보 편집국장, CBC방송국 사장 그리고 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혹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아 상황을 더 복잡하게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제목은 ‘B파일 044316 고참기자’ 주인공은 민주일보 문화부 고참기자 윤순철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B파일 900734 전업킬러’에서는 여자킬러 미호가 등장해서 대통령 측근을 살해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B파일 310218 신참기자’에서는 마포경찰서를 출입하는 민주일보 사회부 신참기자 에스더가 고민 끝에 기사작성을 포기한 건으로 낙종하고서 데스크로부터 야단을 맞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네 사람의 등장순서를 흐트러짐없이 반복하면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전개되는 상황은 모두 따로 벌어지고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하다가 드디어 고참기자와 전업킬러가 동시에 등장하게 되고, 이어서 은행원은 신참기자가 동시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3부가 시작되면서 네 사람은 무대가 되는 원더랜드에 모여들게 됩니다.

 

작가가 조금씩 던져주던 힌트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원더랜드에서 네 명의 등장인물이 모여들어 상황의 핵심을 파헤치게 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뿌려둔 작은 팁들을 서로 연결하여 대단원으로 이끌어 들이는 과정이 탄탄하게 짜여있어 허술해 보인다 싶은 구석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작가의 스토리구성이 정말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읽는 사람의 추리가 이야기 전개를 타고 흐르게 만드는 작가의 힘이 절로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변사사건이 이어지기 때문에 사회부 기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까닭에 사회부 기자를 둘러싼 언론계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저 같은 이도 해당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싶은 구절.... “기자들 앞에서 말실수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걸. 굳이 쓰고 싶지 않아도, 쓰지 않으면 낙종하기 때문에 쓴다. 피를 말리는 미디어 경쟁 시장에서 윤리적 딜레마는 차후의 문제다.(46쪽)”

 

이야기를 끌고 가는 네 명의 주인공에 달려 있는 파일번호의 의미는 3부 원더랜드편에서 밝혀집니다만, 그 비밀을 알게 되면서 씁쓰름한 느낌을 넘어서 등으로 스산한 느낌이 흘러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전개된 상황을 조성한 머리는 별다른 변화가 없으나 다만 몸통은 머리의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마무리되는 상황은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당면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 갑자기 우울모드에 빠집니다.

 

아참 프롤로그에서 음주단속 경찰과 대치하던 주한 중국대사관 외교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은 에필로그에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궁금하세요. 궁금하면 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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