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생명윤리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총서 17
이상목 지음 / 아카넷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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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북소리를 통하여 마크 커쥬스키와 로사 린 핀커스의 <병원윤리 딜레마 31;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96461>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고윤석교수님은 “의료인들은 흔히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고, 환자의 이익을 최선으로 하는 의료행위를 한다면 의료윤리의 원칙과 부딪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때로는 의사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환자의 이익이 환자가 원하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전합니다.

 

물론 사례들이 미국의 병원과 요양시설 등을 포함한 의료 환경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라서 문화적 배경이나 의료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있을 것입니다. 특히 연명치료에 관련된 경우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겠는데, 이는 죽음과 관련된 문화적 배경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삶의 마지막 과정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으므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은 동양이나 서양에서 모두 공감하는 바일 것입니다. 이옥순 등의 <아시아의 죽음 문화;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714358>에서는 흰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사람들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확고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희망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유학의 전통이 오래 이어져 온 동아시아지역 사람들은 ‘삶은 즐거운 것이요, 죽음은 슬픈 것이라서 현세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하는 경향’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연명치료에 대한 입장에서도 소생의 희망이 없다면 품위를 지키면서 죽음을 맞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적극적 안락사까지도 수용하고 있는 서양에 비하면, 부모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싶기도 하고, 또 스스로의 위안으로 삼고 싶은 면이 여전한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서양에서 시작된 존엄사 개념의 영향을 받아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기는 합니다.

고윤석교수님의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우리나라의 일선 의료인들은 대체적으로 임상현장에서 만나는 상황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개인의 의료윤리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기 위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현대의 윤리교육의 필요성을 요약하고 있는 배영기교수님 등의 <생명윤리와 윤리교육;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90297>에서도 생명에 관한 역사적, 철학적 그리고 종교적 이해를 논하였을 뿐, 정작 의료현장에서 당면하고 있는 생명윤리문제가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지구환경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만큼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생명윤리의 핵심을 정리하는 교육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상목교수님의 <동서양의 생명윤리>는 의료현장과 관련된 생명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서구의 문화적 배경에서 출발한 생명윤리의 출현 배경과 그 접근법이 가지고 있는 특성 및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있고, 2부에서는 유교 전통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과 한국에서는 어떠한 접근법으로 생명윤리 문제를 해결할 것이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서구 생명윤리학의 토대가 되었음에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온 그리스도교의 접근방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도 생명윤리학이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라는데, 우리나라에는 불과 20여 년 전에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생물학 연구와 그 응용, 특히 의학 연구에 있어 윤리적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정의되는 생명윤리학은 히포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양의료윤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의료윤리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증진시켜 주기위하여 노력하는 의사를 좋은 의사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1960년대 들어 이러한 의료윤리 환경에서는 환자의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의사의 독점적 권위가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1960년대 들어 미국사회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월남전 참전반대운동, 유색인종에 대한 권리와 기회보장운동, 그리고 여권운동이 활발해졌는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의료영역에도 영향을 미쳐 의사의 절대적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환자의 자율성과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의학기술이 빠르게 진보함에 따라서 의료행위는 점차 장비에 의존하게 되면서 의사들의 관심이 환자에서 의료장비로 옮겨지고, 의사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여 결정하던 치료의 방향이 장비에서 나온 데이터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 것도 또 다른 요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1967년 남아프리카의 버나드박사가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하면서 생명의 의미, 그리고 죽음(death)과 죽어감(dying)의 차이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생명윤리학의 출현이 예고된 셈이라 하겠습니다.

 

전통 의료윤리학이 의사들 사이에서 배타적으로 논의되어왔던 것과는 달리 생명윤리학은 출발에서부터 도덕신학과 도덕철학 그리고 의료윤리학과 법학이 상호교류하는 가운데 성립하게 되었기 때문에 서로 상이한 접근방법을 통일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따라서 생명윤리학자들은 구체적인 생명윤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접근법 확립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 접근법에는 서구적 문화적 전통이 스며들게 된 것인데, 우리 문화를 녹여 보완하는 노력없이 서구적 생명윤리학의 접근방법을 그대로 도입하면서 우리나라의 의료현장에서 만나는 생명윤리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만족한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서양의 생명윤리학이 발전하는 과정에 참여한 분야에는 나름대로의 접근방식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생명윤리학의 접근방법이 정립되는데 기여한 접근법에는 토대윤리, 원칙주의, 결의론, 공동체주의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접근법 등이 있습니다.

 

도덕이란 단 하나의 보편적 토대에 기초하고, 그것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토대윤리의 핵심입니다. 토대윤리에서 원칙의 보편성과 일반성의 강조는 도덕 이론의 윤리적 상대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공정성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선과 가치가 다양한 다원주의 사회에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상식적 도덕에서 생겨난 원칙은 다원적 사회에서의 윤리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원칙에는 자율성존중 원칙, 악행금지 원칙, 선행 원칙, 정의 원칙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주의에는 원칙들 간의 우선성 문제와 원칙의 해석문제가 있어 원칙들을 구체화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의론은 사례를 분석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으로 구체적인 상황과 사례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 실제적인 도덕적 추론의 정확성과 적합성을 보증하기 어렵고, 새로운 사례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개인을 의학적 의학결정의 최종 판단자로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접근과 달리 공동체적 접근은 좋은 삶에 대한 체계적 전망을 가지는 장점이 있지만, 공동체의 종교, 지역 문화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생명윤리학이 서양에서 발전해온 까닭에 유교적 영향이 뿌리 깊은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온정적 간섭주의(parternalism)를 배제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근거한 서양의 생명윤리 기준을 적용하는데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가족 중심주의적인 문화전통에 근거한 도덕 판단이 서양의 그것과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유교적 도덕전통을 보완한 새로운 생명윤리 접근방법이 도출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교의 도덕 관점은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이해하고, 인간애를 그러한 인간관계의 중심적인 도덕원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의료현장에서는 의학적 의사결정 과정에 환자 자신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가족들의 의사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동양 사회에서의 가족은 서양의 자율적 개인에 비교할 수 있는 자율적인 사회단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 가족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고통을 같이 나누고 있기 때문에 의학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환자와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자는 “의학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환자의 가치관, 의사의 의무와 역할, 환자의 자율성 인정 여부, 의학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의 범위와 참여 정도는 문화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의학적 의사결정 방식은 문화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야 할 것(122쪽)”이라 하고, 한국인의 의학적 의사결정모델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가족 결정 모델’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주의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특성과 더불어 가족은 고통 받고 있는 환자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환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3부에서는 생명윤리에 대한 종교적 관점, 특히 기독교와 가톨릭의 입장을 별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의하여 야기된 도덕문제들 가운데 특히 생명현상에 관한 부분, 예를 들면, 출산과 죽음 그리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관한 내용들은 신학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종교에 따라서 교리의 근본적 차이 혹은 교리의 해석의 차이에 따라서 시각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공회 신학자 요셉 플레처의 경우,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서 나타난 결과가 인간에게 해악을 끼칠지라도, 그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유익함이 크다고 할 때 그것은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하는데, 예를 들면 임신중절, 인공수정, 피임, 유전자 감별, 인간 복제는 인간의 고통을 축소시키고 인간의 선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에 지지한다.(185쪽)”는 행위공리주의적 입장입니다. 반면 감리교 신학자 폴 램지의 경우 개인의 선이 사회의 선에 결코 지배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플레처의 공리주의적 입장에 반대하고, 인체실험의 윤리, 죽음과 말기 환자의 윤리, 장기이식의 윤리에 있어서 개인의 불가침성과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생명윤리학은 그것의 유일한 토대를 산출된 이익에 두어서는 안된다고 보았고, 올바른 행위의 기준은 합리적이며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설명동의가 필수조건이 되어야 한다.(187쪽)”고 했습니다. 대표적 가톨릭 도덕신학자인 리차드 맥코믹은 플레처의 자유주의와 램지의 보수주의 사이에서 중간자적인 입장이자만 그의 생명윤리사상은 인간의 자유, 개성 그리고 사회성과 같은 인간생명의 가치를 보호하는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적 자연법 윤리에 근거한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관련된 가치들이 서로 상충될 경우 항상 최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도덕적 선택은 획득하게 되는 가치와 상실하게 되는 가치를 적절하게 계산한 다음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동서양의 생명윤리>는 의료현장에서 의학적 결정을 하는데 있어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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