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의 위기
멜빈 코너 지음, 소의영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의 평균기대여명이 150세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의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게 된 것에 의학의 발전이 크게 기여해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현대의학의 빛나는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전염병과 각종 암질환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어 현대의학에 한계에 이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년전에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추적한 마이클 무어감독의 영화 <식코>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세계적인 의학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막상 보건의료제도는 체계적이지 못해 생긴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로부터 출발한 의학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문화적 제도의 틀 안에서 빠르게 발전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그 범위가 광범위해지고 파장도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대의학의 위기는 의학이라는 학문의 위기라고 하기보다는 과거와는 달라진 의학을 둘러싸고 있는 보건환경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사회구성원의 건강을 담보하는 의료제도의 지속발전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학이 발전하는 것처럼 사회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걸맞게 보건의료의 역할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의학과 의료의 위기에 대한 명쾌한 진단과 처방’이라고 요약하고 있는 멜빈 코너교수의 <현대의학의 위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원저가 1993년에 처음 독자를 만났고 우리나라에 번역소개된 것은 2001년입니다. 따라서 시대적 배경이라거나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저자가 다루고 있는 환자-의사관계, 현대의학의 발전의 근간이 된 과학적 방법론의 딜레마, 약물 유전자치료 그리고 수술 등을 적용하는데 있어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 정신질환자와 에이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리고 건강한 노후생활과 품위있게 죽음에 이르는 방법 등의 문제는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목적이 ‘보건의료 정책에 관한 의제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의사와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든 나쁘든 간에 다양한 의료정책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국, 유럽, 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서의 의료제도를 인용하여 문제해결방안을 고민하도록 하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제도의 현황이 최근에서야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탓인지 우리나라의 보건의료환경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읽을 수 없는 점은 아쉽다 하겠습니다.

 

요즈음 환자들이 변했다는 생각하는 의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적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넘쳐나고 있는 의학정보로 무장하게 된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병에 대응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데, 어쩌면 ‘당신의 의사에게 화를 내라’고 충고하는 버니 시겔교수와 같은 의사들의 영향도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으로 무장하고, 사실을 열심히 알아내며, 포기를 거부하고, 의사에게 침묵의 규율을 깨도록 강요하고, 환자들에게 자신의 병에 대하여 되도록 많이 알고 있으라고 추종자들을 세뇌시켰습니다(48쪽).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환자의 인식이 왜곡되는 경우 오히려 치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영국의 줄리안 튜터하트 박사가 제시한 ‘환자를 동료처럼’이라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 주목받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사실을 의논하고 치료와 예방책을 결정하는 상호협력관계입니다. 앞서 인용한 바니 시겔교수가 추천하는 환자-의사 관계와는 분명 차별점이 있다 하겠습니다. 근래 ‘환자를 가족처럼’ 치료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의사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 관계에서는 의사의 지나친 감정이입이 객관적 판단을 왜곡할 위험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현대의학은 분명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면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옛날 의사들은 환자의 병세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뿐 온천이나 공기가 맑은 곳에서 휴양하는 것 말고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에테르를 사용하여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고, 이어서 발견한 질병세균설을 토대로 한 무균소독법, 이어서 20세기 들어서면서 방사선 진단법, 생화학검사법 등이 개발되면서 질병의 진단이 보다 정확해지게 되었고, 약물에 의한 화학요법이 가능해지면서 치료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환자의 진단과 치료가 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게 되면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장에서 긴밀하던 환자와 의사의 교감이 점차로 비중을 잃어가게 되었으며 급성 질환 혹은 중증 질환에 의료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의 진료가) 점점 냉혹해지고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 의료는 병원에서보다는 지역 사회로, 가능하다면 가정으로까지 전달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107쪽)”

 

1921년에 벌써 이런 문제가 지적되었고, 1983년에 미국의 의학교육을 담당하고 유명 의과대학의 학장들은 ‘의학교육의 목표는 최적의 건강에 있지 않다’거나, ‘우리는 의사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조기 전문화와 과학을 너무 강조하는 경향을 바꾸어야 한다’거나, ‘환자와, 그 가족과, 환자의 생애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심장질환 병동의 3호실 두 번째 환자의 상태를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의학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성 질환인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진료행태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실시하고 있는 감기항생제 처방률 평가에 대한 의료계의 볼멘소리가 높았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감기상병에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 항생제내성 세균을 만들어내는 부작용을 키우는 꼴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항생제를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자들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내성 균주의 출현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1950~1960년대에는 바로 우리 일반인들이 의사들을 찾아가서, 항생제가 필요하지도 않은 바이러스성 질환인 감기 등에 항생제를 처방하도록 종용하였던 것이다.(130쪽)”

 

최근 일본의 후쿠오카의 병원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하여 한국과 일본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줄기세포관련 회사가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시술을 통하여 효과를 보았다고 하는 일부 환자와 가족들이 회사측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약물 혹은 치료법은 엄정하게 관리되고 있는 사전 검증체계를 통과하여야 일반인을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의 입증절차가 까다로운 우리나라와 미국을 피하여 일본에서 일종의 임상시험을 하는 셈이라며 환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치료제를 기다리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완벽하게 입증될 때까지 기다리느라 가능성마저도 시험해보지 못하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시술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문제라 하겠습니다.

 

저자들은 '수술의 적합성과 남용‘을 논하기 위하여 전두엽절제술의 문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전이 되었습니다만, 잭 니콜슨이 주연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전두엽절제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남들과 같지 않은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용된 남자 주인공이 병원의 방침대로 순응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위하여 대항하다가 전두엽절제술을 받고 나서 감정이 사라진 모습으로 등장하여 관객에게 충격을 주었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전두엽절제술은 1930년대 후반 대뇌의 전두엽과 감정을 조절하는 중추와의 연결을 절단하는 수술인데 정신질환 환자를 요술처럼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들어 이 수술을 받은 환자의 삶이 정신적, 감정적으로 너무 심하게 손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전두엽절제술을 의료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고안되었을 당시에는 미처 고려되지 않았던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임상시험을 승인받아 조건부로 시술을 시작한 카바수술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술자와 당국 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에서도 참고할만 하겠습니다.

 

역시 제가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내용에 주목한 것입니다만, 미국의 경우 최근까지 제왕절개분만이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분만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제왕절개분만을 선호하는 경향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의료계에서는 신생아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는 사실을 들어 타당성을 옹호하고 있습니다만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제왕절개수술이 더 적게 시행되면서도 신생아사망률이 미국과 비슷한 정도로 감소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산모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임에도 제왕절개분만의 비율이 늘지 않고 있습니다만, 미국과 비교하면 다소 높은 편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왕절개분만이 높은 것은 외국과는 다른 이유로 수술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저자들이 알면 꼭 인용할 내용일 것입니다.

 

정신질환자의 고통을 다룬 부분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9772557>를 통하여 광인에 대한 서구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저자가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정신질환은 치료방법이 없어 정신병원에 수용하여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정신병원하면 “197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있어서 실존하는 지옥이었다. 수백명은 사슬에 묶여 있었고, 많은 환자들은 독방에 갇혀 있었다. 강압적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은 그들은 복종시키기 위하여 몸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공포와 고뇌, 줄지 않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251쪽)”라고 저자가 적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환경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최근의 정신병원은 대부분 일반병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약을 먹고 있는지 돌볼 가족도 지지체계도 없었고, 그 결과 그들은 병이 재발하여 병원에 재입원하게 되었으며, 다시 안정되어 퇴원하고, 약은 더 이상 복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 ‘회전문 증후군’이 정신질환 환자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242쪽)”라는 존 맥빈 신부의 회상은 1970년대까지의 미국사회의 현상이었고,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문제를 지금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약물요법이나 정신요법 등이 발전하게 되면서 급성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해서 환자를 조기에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정신질환 치료의 최근 동향이기도합니다. 만성화된 환자들에게 안정된 치료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역시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노후생활과 품위를 갖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에 다시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미루어 두겠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와 연관시켜 오늘날의 보건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민해보았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우리 사회에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는, 그가 의학, 의술, 의료를 단순히 지식과 테크놀로지로 좁혀서 바라보지 않고 문화적 지평으로 인식하고 있어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는 옮긴이의 추천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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