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책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르한 파묵의 네 번째 소설 <검은책>은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고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심지어는 홀수장은 제3자의 눈으로 갈립의 행동을 뒤쫓고 있으며, 짝수의 장은 갈립의 사촌형 제랄이 1인칭으로 서술하는 글(혹은 칼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한참을 읽어나간 다음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갈립의 아내 뤼야는 백부의 딸이니 사촌간인 셈입니다.

 

홀수장의 주인공 갈립이 출근해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가지 집에 있던 뤼야가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을 때는 종적이 묘연하고, 사촌형 제랄 역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어서 갈립은 사라진 아내와 제랄의 행방을 찾는 과정을 제3자적 위치에서 뒤쫓아 가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구조를 두고 갈립은 누군가가 자신을 뒤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고 적고 있기도 합니다. 독자는 갈릭의 뒤를 따라 이스탄블 시내 곳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만약 이스탄블에서 잠시라도 살아보았더라면 이야기가 더욱 실감났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하지 못하니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손끝이 겨우 보이는 안개 속에서 앞선 사람을 놓칠까 바짝 붙어가다 보면 좌우로 무엇이 지나가는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갈립의 행적을 뒤쫓는 제3자가 가끔씩 갈립을 놓치는 모양으로 설명이 생략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3장의 말미에 뤼야가 남겼다는 작별편지를 발견했다는 서술을 건너뛰고 있는 장면이라던가 열아홉 단어로 되어있다는 편지도 ‘가족들에게 잘 말해’, ‘네게 곧 연락할게’라고 조각내어 독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문은 뤼야의 종적을 찾기 위하여 찾은 친구 사임의 집에서 갈립의 행동이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 갈립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뤼야에게 전화를 했다. 어쩌면 밤늦은 시간까지 사임의 집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113쪽)” 분위기가 미스터리한 쪽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임은 다양한 출판물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입니다. 갈립은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통하여 뤼야의 전남편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한다는데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행적을 뒤쫓는 남자가 심야에 길거리에서 만난 삐끼에 이끌려 퇴역배우를 흉내내는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제랄의 컬럼은 다양한 소재를 통하여 터키의 역사를 비롯해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랄이 작가가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글쓰기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칼럼니스트들을 통하여 소개하기도 합니다. 도덕보다는 재미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제랄에게 전하는 이들의 충고는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라면 따로 메모를 해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일부를 인용해보면, “즐겨 쓰는 속담, 관용구, 격언, 일화, 농담, 시행, 금언을 모아두라.”, “주제를 택한 다음 글에 왕관을 씌울 적당한 금언을 찾지 말고, 금언을 택한 다음에 이 왕관에 걸맞는 적당한 주제를 찾으라.”,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기 전에는 책상에 앉지 말라.(130쪽)” 등등입니다.

 

자신의 작품들에 대하여 “나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 나오는 젊은이들에서 <고요한 집>이 탄생했고, <고요한 집>에 나오는 파룩에게서 <하얀성>이 나왔다.”고 파묵이 말한 것처럼, <검은책> 역시 <하얀성>과의 연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겨울날, 아내가 이렇다 할 이유나 핑계도 대지 않고 떠나 버리자, 작가에게는 힘든 시기가 시작되었다. (…) 아내가 떠나기 전에 그는 서로의 삶을 바꾼, 서로 닮은 두 사람에 관한 책(독자들이 ‘역사적’이라고 했던)을 썼다고 한다.(236쪽)” 여기에서 말하는 여기에서 ‘서로 닮은 두 사람에 관한 책’은 파묵의 전작 <하얀성>을 암시한다고 하는데, 아내가 떠난 작가에서 갈립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어 제랄과 갈립이 하나의 모습으로 통합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정리를 해보면, <검은책> 1권에서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 홀수장과 짝수장이 교체되면서 터키의 역사로부터 현대의 사회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엮어 넣고 있어 이야기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미스터리한 상황입니다. 이렇듯 풀어놓은 이야기가 2권에서는 어떻게 모아져 정리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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