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마뇽 -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현생인류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수민 옮김 / 더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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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추리소설 <제노사이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53780>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내란으로 어수선한 콩고에 출현한 신인류를 제거하려는 미국정부의 음모를 뛰어난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신인류가 일본의 민간기구를 움직여 저지하고 생존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줄거리입니다. 미국 정부의 이와 같은 음모는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제노사이드, 11쪽)”는 내용을 담은 정보보고를 토대로 현생인류의 멸망을 우려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현생인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인류가 출현하게 되면 지구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모든 자원을 공유해야 할 것이므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경쟁에서 밀려난 현생인류가 시나브로 멸망의 길로 들어서거나, 더 나쁜 상황을 상정한다면 신인류의 공격을 받아 더 빠르게 멸망하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래상황을 예견한 미국 정부의 고위층은 신인류를 제거한다는 극단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신인류는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관심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이브’가 인류의 조상으로 지목되는 것처럼 가즈아키는 아프리카에 사는 현생인류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신인류가 출현할 것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의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 http://blog.joinsmsn.com/yang412/10862735>에서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하여 현생인류는 순식간에 멸망의 길에 들어서고, 살아남은 소수의 현생인류는 그때까지 쌓은 문명도 같이 사라지면서 동물처럼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우엘벡은 이처럼 황폐해진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신인류가 체세포복제기술을 통하여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견하였습니다. 현생인류의 시선으로 인공으로 조성된 환경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신인류의 삶을 과연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인류가 과연 현생인류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등장했던 구인류를 현생인류가 대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초기 현생인류는 물론 고인류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면확하게 재구성하는 것 자체가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고고학, 문화인류학, 고기상학, 지질학 등등 다양한 학문영역의 발전에 힘입어 퍼즐놀이를 짜 맞추는 작업에 조금씩 진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의 <크로마뇽>은 바로 네안데르탈인이라고 하는 고인류와 크로마뇽이라고 하는 현생인류가 공존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네안데르탈인은 “강력한 힘과 용기를 가졌으며 가장 단순한 옷차림에 무기를 소지한 원시적인 인류로, 그들은 말로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지적능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추측하였습니다. 반면 크로마뇽인은 “최초의 해부학적 현대 유럽인으로, 그들은 잘 발달된 뇌와 언어능력, 혁신적인 성향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가진 모든 놀라운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었다.(5쪽)”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관계를 아프리카에서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고인류와 관련된 고고학적 흔적이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은 탓으로 보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시조라고 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6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하여 40만~50만년 전에 서아시아 루트를 타고 유럽으로 이주하였는데, 아마도 기후변화로 인하여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게 된 것이 이유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20만년 전경에는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번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7만년전 무렵에는 첫 현생인류가 역시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였고, 이들은 12~13만년 전의 간빙기 동안에 번성하게 되는데, 7만3천5백년 전에 일어난 토바산의 화산폭발로 많은 인류가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5만5천년전을 기점으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4만5천년 전무렵에 서유럽에 크로마뇽인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3만년에 걸쳐 이어진 맹추위가 끝난 15만년 전부터 숫자가 늘어나 영국의 남부와 대서양에서부터 벨기에와 프랑스까지,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중앙유럽을 거쳐 흑해의 먼 동쪽에서부터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또는 그 너머 중앙아시아 깊숙한 곳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른 방대한 지역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만 9천년 전에는 이탈리아의 캄파니아 화산이 폭발하여 역시 많은 생명체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3만년전 무렵부터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공존한 시기는 4만5천년 전부터 약 1만 5천년 이상이 되는데 그들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저자는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크로마뇽인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을 바로 공격하여 학살했거나 그들의 사냥터를 빼앗고 외각으로 내쫓아 서서히 멸망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저자가 상상하는 것처럼 두 집단이 서로 거래를 하고 사냥법을 비롯한 기술,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결혼까지 했을까요?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에서 식인풍습을 증거하는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크로마뇽유적에서는 식인풍습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크로마뇽인들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도구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고 있는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이 생존했던 오랜 세월을 두고 기술의 발전을 시사하는 증거가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또한 그들 간에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발전된 언어가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인류는 영장류로부터 한 단계 발전하여 도구와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만, 현생인류처럼 이런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인지능력은 갖추어지지 못한 존재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용한 사람들인 네안데르탈인들은 일상에서 놀랍도록 인간다운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인류가 수십만 년 전 유럽에서 사냥하던 때부터 거의 변한 것이 없는 원시적인 방식을 따랐다. 그들은 짐승을 사냥했고, 그들의 사냥감과 동일한 환경적 영향을 받았으며, 때때로 포식자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그들이 목가적인 평화로운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131쪽)”

 

저자는 현생인류가 고인류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공격적이었을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원활용에 있어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점과 현생인류가 고인류에 비하여 유리한 입장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대인류와 현생인류는 대부분 비슷한 사냥감을 사냥했는데 현생인류가 사용하는 무기가 더 가볍고 관통력도 더 좋았다. (…) 이 두 인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오리냐크기 사람들에게는 완전한 표현이 가능한 언어능력이 있었고 호모 사피엔스가 가지는 모든 인지능력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몸이 구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의사소통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현생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상상력과 자아인식능력이 부족했다.(206쪽)”

 

저자는 엄청난 규모의 화산폭발에 따르는 환경재앙으로 식량이 급감하여 생존환경이 급변하였을 뿐 아니라 이어서 닥친 극심한 한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복제작기술의 차이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생존가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인류학의 연구성과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합니다만, 고인류가 갑자기 닥친 환경변화를 고스란히 앉아서 당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생존에 관한 생물체의 반응은 본능적인 것이라 할 수 있어, 사냥감이 부족하면 사냥감을 따라, 추위가 닥치면 따듯한 남쪽으로 이주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 말입니다. 저자는 지나치게 유럽이라는 제한된 장소에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을 집어넣고 생존에 관한 문제를 풀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 출현했던 아프리카에 남아있던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유럽 이외에 서남아시아를 경유해서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은 없었겠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현생인류가 급속하게 많아지면서 생활영역이 확대됨에 따라서 지구상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멸종되는 과정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인류의 쇠망 역시 이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수적으로 우세하던 구인류가 현생인류에게 밀리게 되는 과정에는 두 인류의 능력의 차이에 더하여 기후변화도 기여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생인류에 의한 제노사이드가 커다란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배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노사이드는 다양한 이유로 지구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념, 종교 문제로도 제노사이드가 벌어지고 있는데, 생존에 관련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치열하게 대립하였을 것 같습니다. 태즈메니아 원주민이 멸망하는 과정을 통하여 현생인류의 제노사이드 성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교수의 <제3의 침팬지>에서 인간에 숨어 있는 제노사이드 본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교수는 “인간의 모든 본성 중에서도 동물의 선조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제노사이드 본성이다.”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크로마뇽인의 유적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먹었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크로마뇽인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집단학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포리스터 카터의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 http://blog.joinsmsn.com/yang412/10284691>에서는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일찍이 터득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현명한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란 말이지...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이런 지혜는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동물세계의 포식자들이 허기를 느낄 때만 필요한 만큼 사냥에 나서는 것을 보고 배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크로마뇽인들은 필요한 만큼만 사냥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냥감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기 때문에 사냥과정에서 수확을 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냥과정에서 부상을 당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이상의 동물을 죽이기 위하여 사냥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비용효과적이었겠는가 싶습니다. “매년 사냥꾼들은 짧은 마구잡이식 살육기간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했다. (…) 많은 들에서 마치 사냥꾼들이 즉석에서 바로 먹거나 말릴 수 있는 부위만 취한 다음에 수십 마리의 죽은 말들을 그냥 석게 버려둔 것처럼, 돌칼을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336쪽)”

 

브라이언 페이건교수의 <크로마뇽>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인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가늠할 수 있고 도판으로 소개하고 있는 현생인류의 초기 예술작품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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