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세트 - 전5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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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밑, 우리 문화계는 <레 미제라블>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선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리는 NRW 트로피 대회를 통하여 은반에 복귀하는 피겨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쇼트프로그램에서 72.27점으로 여전한 기량을 선보였는데, ‘레 미제라블’을 연기하는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용인 포은 아트홀에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라이선스공연으로는 한국 초연의 막을 올렸고(http://blog.joinsmsn.com/yang412/12972541)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가 주연하고 톰 후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레 미제라블>이 곧 개봉될 예정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50대 연기자 그룹’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레 미제라블>이 19일부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박장렬 연출로 개막될 예정입니다.

 

뮤지컬 관람을 앞두고서 시작한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 전작 읽기를 마쳤습니다. 배고픈 조카들을 위하여 빵 한 덩이를 훔친 장 발장이 19년에 걸친 감옥생활을 마치고 출옥한 다음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치지만 미리엘 주교의 용서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던 한 인간을 구원한다는 내용을 그려내고 있다는 정도로만 겨우 기억하고 있는 <레 미제라블>에 담겨 있는 많은 메시지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부분, ‘장 발장’이라는 제목으로 된 제 5부에서는 앙졸라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공화주의자들이 바리게이트를 쌓고 시가전을 벌이지만 연대규모의 근왕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보낸 편지를 받게 된 장 발장은 두 젊은이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하여 바리게이트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뜻밖에 밀정으로 체포되어 있는 자베르 형사를 방면하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쫓고 쫓기던 두 사람의 관계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역시 전작에 걸쳐 끊임없이 장 발장과 엮이던 테나르디에도 이야기의 마무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전투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구한 장 발장이 그 유명한 파리의 하수도를 통하여 포위망을 뚫고 할아버지 질노르망씨집으로 무사히 도착하게 되면서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은 결혼으로 아름다운 결말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과 함께 숨어살 수밖에 없었던 코제트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두 사람으로부터 떠나는 장 발장은 결국은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감사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레 미제라블>은 19년에 걸친 감옥생활을 통하여 정신이 피폐해진 장 발장이라는 남자가 우연히 디뉴교구의 미리엘주교의 집에서 하루 묵게 되고, 은촛대를 훔쳤다는 혐의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지만 미리엘주교가 감싸준 것이 계기가 되어 바른 정신을 되찾게 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게 된다는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장 발장의 일생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 언어학적 고찰을 더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황제가 워털루에서 벌였던 마지막 전투가 진행된 과정을 세밀하고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왕정복고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혼란상, 파리의 부랑아들의 삶, 프랑스 수도원의 수도자들의 삶, 당시 프랑스사회에서 사용하던 곁말, 심지어는 파리의 하수도에 대하여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야기가 곁가지로 빠지게 됩니다만, 파리의 하수도가 저자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생 드니의 바리게이트가 엄청난 규모의 근왕군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로가 될 수 있다고 착안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도시의 하수도야말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는 최악인 곳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바닥까지 자신을 낮춤으로써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감추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역사는 하수도를 통과한다.(161쪽)”고 적고 포석들 사이에서 한 방울 한 방울 여과된다고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철학은 시궁창을 가지고 다시 도시를 만들고, 진흙을 가지고 다시 풍습을 만들어 낸다.(162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구원의 삶으로 승화시켜가는 장 발장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남을 속이고 위협하면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는 테나르디에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분상승를 꿈꾸며 부나비처럼 살던 팡틴은 코제트를 낳고 남자로부터 버림받으면서 몰락하여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돌아간 고향마을에서 장 발장을 만나면서 코제트의 미래를 부탁하고서야 고단한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장 발장의 삶이 빛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카들의 배고픔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장 발장이 마을 빵집 유리를 깨고 한조각의 빵을 훔친 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는데, 조카들이 눈에 밟혀 몇 차례 탈옥을 시도하면서 형기가 늘어나 19년에 이르게 됩니다. 오랜 수형생활이 순수했던 장 발장의 마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마음이 메마르면 눈도 마른다. 형무소를 나올 때까지 십구년 동안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었다.(1부, 173쪽)” 그렇기 때문에 출옥하여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던 그를 받아들였던 미리엘주교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칠 생각을 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주교님은 그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는 약속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永罰)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천주께 바친 거요.(1부 193쪽)”라는 말을 전합니다. 미리엘주교님은 무한한 사랑의 비로 메마른 그의 정신을 적셔 종국에는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장 발장은 주교님의 당부대로 주교님의 은을 종자돈으로 하여 팡틴의 고향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 구슬을 만드는 사업을 벌여 돈을 벌게 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를 뒤쫓는 자베르형사가 잡아넣은 샹마티외가 자신을 대신하여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거나 자신의 오해로 피해를 입게 된 팡틴에게 약속한대로 쫓기는 상황에서도 코제트를 돌보는 등,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숨어살면서도 삶이 어려운 사람들을 꾸준하게 돌보기도 하는데, 장 발장의 이런 행적은 남에게 빌붙어 살 궁리만 하는 테나르디에의 사악한 계교에 말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장 발장이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 번 돈을 가지고 코제트와 함께 외국으로 도망을 쳤더라면 자베르형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파리를 떠나지 못한 것은 삶이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였는지 아니면 코제트때문이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어린 코제트가 훌륭하게 성장하기 위한 장 발장의 배려라고 한다면 자베르형사에 쫓기는 과정에서 숨어든 픽퓌스 수도원에서 코제트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젊은이라면 언젠가는 이성에 눈을 뜨게 된다는 점도 생 드니 거리에서 바리게이트를 쌓고 시가전을 준비하는 마리우스에게 보낸 코제트의 편지사본을 우연히 본 다음에서야 깨닫게 되고, 코제트와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제트에게 마음을 의지하겠다는 이기적일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픽퓌스 수도원에서 코제트와 생활하는 동안 “그는 부성애가 태어나 마음속에서 더욱더 커져 가는 것을 느꼈고, 마음으로 이 아이를 품고 있었고, 이 애는 내 딸이다, 아무 것도 이 애를 내게서 빼앗아 가지 못한다.(4부, 105쪽)”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코제트를 통하여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코제트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마지막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생 드니 바리게이트의 전투에 참여하여 마리우스를 보호하고 부상을 당한 그를 복잡하기만한 파리의 하수도를 통하여 구해내고 코제트와 결혼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제트의 행복한 삶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자신의 범죄사실을 마리우스에게 고백하고서 두 사람으로부터 떠날 결심까지 한 것입니다.

 

번역을 하신 정기수교수님은 “이 소설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가 하는 과정을 그린 것(5부, 497쪽)”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작가는 마리우스의 눈을 통하여 장 발장의 변모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 장 발장 속에서 뭔지 알 수 없는 높고 어두운 모습을 어렴풋이 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놀라운 덕이 그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의 광대무변함 속에서 겸손하고, 온화한 최고의 덕이. 이 죄수는 예수로 변모하고 있었다.(5부 470쪽)” 스스로를 희생하여 누군가를 구하는 삶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이 미리엘주교님의 사랑으로 한 인간의 피폐한 정신이 구원받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야기 곳곳에 흩어둔 19세기 말 프랑스 민중들의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도 주목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사이의 프랑스 사회의 사상적 움직임을 이 작품에 녹여낸 것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앙졸라를 중심으로 하는 ‘ABC의 벗’들이 주동하여 생 드니 거리에 바리게이트를 쌓고 근왕군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설명하면서 공화주의자들의 혁명배경을 설명하고 이들의 항전심리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빅토르 위고가 나폴레옹 황제의 휘하에서 장군이었던 부친을 따라 유럽 각지를 따라다녔음에도 성장하면서 전통 왕정을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가, 1948년 2월 혁명 이후에는 민주주의자가 되었고 공화제를 지지하게 되었던 삶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위고는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에 성공하여 황제가 된 다음에는 국외로 망명하였다가 1870년 쿠데타로 나폴레옹3세 황제가 물러난 다음에 귀국하여 왕성한 작품활동과 정치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레 미제라블>은 망명 중에 쓴 작품으로 군주제를 반대하고 공화제를 찬성하는 그의 사상이 반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젊은 공화주의자들의 모임 ‘ABC의 벗’을 리드하는 앙졸라가 생 드니거리의 바리게이트 앞에서 민중들에게 하는 연설을 빌어 당시 프랑스 민중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굶주림, 착취, 곤궁으로 인한 매춘, 실업으로 인한 비참, 그리고 교수대, 그리고 전쟁, 그리고 싸움, 그리고 사건들의 숲 속에서 우연히 일어난 강도질들 같은 것 말이요. (…)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오. 지구가 자신의 법칙을 수행하듯이 인류는 자신의 법칙을 수행할 것이고, 영혼과 천체 사이의 조화가 회복될 것이오.(5부, 45쪽)”

 

오래 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레 미제라블>의 전체 줄거리가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은 것은 아마도 축약된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1962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원전을 바탕으로 번역 소개하셨던 정기수교수님께서 이번에 다시 원전을 새롭게 대조해가면서 요즈음의 우리말로 번역소개하여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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