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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2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8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전편에서 퓌순이 사라진 다음에서야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케말이 그녀의 종적을 뒤쫓지만 묘연하기만 하던 그녀와 가족이 사는 곳을 결국은 찾아내게 되고, 그녀가 원했던 자전거와 귀걸이 한짝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집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이미 영화감독 페리둔과 결혼을 한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를 2864일... 이 시점에서 퓌순에 대한 케말의 사랑을 재평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집념이라고 매도하기보다는 작가가 의도한 순수함에 동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퓌순과의 관계를 시벨과의 결혼과는 무관한 혼외의 사랑으로 가져가려는 단순한 생각이 잘 못된 선택이었기에 먼 길을 돌아가는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작가는 이러한 케말의 사랑을 집념이라는 값싼 단어보다는 순수함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겠습니다. “독자들이나 관람객들은 내가 그 순간과 상황을 경험할 때는 전적으로 진심이었으며 항상 순수했다는 것을 제발 기억해주었으면 한다.(89쪽)”
그러면 퓌순이 케말 앞에 다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편의 끝장면에서 가난한 퓌순이 영화배우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케말이 영화제작을 지원하는 도움이 절실해서였던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나를 만난다는 것을 이제는 숨기려고조차 하지 않았다.(15쪽)” 퓌순의 어머니 역시 그런 소망을 노골적으로 지원해달라 요청하기도 합니다. 케말은 퓌순의 그런 의도가 불순하다는 생각에 거리를 두지만 결국은 퓌순과 그녀의 남편 페리둔을 지원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절절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케말은 신체적 접촉을 거부하는 퓌순의 눈치를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퓌순의 집을 방문하여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에도 감지덕지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보니 중학생 무렵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집을 찾아가더라도 가끔 바둑을 두기도 하지만 따라 책을 읽던가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인데, 이런 기억에서 케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페리둔이 시나리오를 완성하여 촬영에 들어가지만 퓌순은 상대 남자배우와의 신체적 접촉을 꺼려하는 페리둔과 케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배우로 데뷔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퓌순의 미모에 반한 다른 영화감독이 그녀를 기용하고자 하였지만, 역시 두 사람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이런 정황이 퓌순의 마음에 상처로 남았던 모양입니다. 한편 페리둔과 퓌순의 결혼생활에는 비밀이 있었고, 결국은 페리둔이 감독한 영화의 주연배우 파파트야와 사랑에 빠지면서 퓌순과 페리둔이 파경을 맞게 되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케말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처음 만났을 때 쉽게 몸을 열었던 퓌순이었지만, 페리둔과의 결혼생활에서 육체적 관계는 없었다고 강변하는 한편, 케말과 결혼을 약속하고 있음에도 혼전관계를 거부하는 단호함을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해답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케말은 퓌순과 어머니 네시메고모와 함께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불가리아에서인가 술을 마신 퓌순이 차를 운전하면서 버드나무로 돌진하여 자신은 현장에서 죽음을 맞고 케말은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남게 되는 불행한 상황을 맞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 앞서 배우로 데뷔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강한 비난을 퍼부었다는 점으로 보아 퓌순은 자신의 운명을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그래도 케말과 동반자살을 꿈꾸었다고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케말은 퓌순이 떠난 다음에 그녀와 연관이 있는 물건을 수집하며 그녀를 기억하려 노력하였는데, 퓌순이 죽은 다음에는 그녀가 살던 집을 아예 박물관으로 꾸며 그녀와 관련된 물건들을 전시하려 기획하게 됩니다. “소설과 박물관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을 진심으로 설명하여 우리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만드는 것(113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순수박물관인데, 순수박물관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5,723곳의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여 참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치 저자가 이토록 많은 박물관을 방문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어 보입니다. 작가의 나이를 고려하였을 때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케말이 방문한 박물관 가운데 프랑스 일리에콩브레에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 박물관이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소설 <순수박물관>에서 케말의 행적을 그리는 과정이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듯도 합니다. 작가는 퓌순의 아버지 타륵씨의 벽시계 이야기를 통하여 시간과 기억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지금’이라는 하나하나의 순간들과 ‘시간’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자처럼, 이 하나하나의 순간은 나뉠 수 없고 쪼개질 수 없다. 시간은 이런 나뉠 수 없는 순간들을 합친 선이다.(35쪽)” 즉 순간들을 모은 시간이 바로 기억이 된다는 점입니다.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을 글로 남긴 프루스트는 “우리의 사념, 우리의 생활, 곧 실재를 구성하는 것은, 서서히 기억에 의하여 보존된 일련의 부정확한 인상의 사슬인바, 거기엔 우리가 실제로 겪은 바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이른바 ‘체험’의 예술이란, 이와 같은 허위를 재현시킬 뿐이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돌아온 시간, 289쪽)”라고 적어 기억의 불확실성을 짚고 있기도 합니다.
케말은 바로 시간을 기억하고자 순수박물관을 만들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파묵에게 부탁하여 퓌순과의 사랑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달라 부탁하였다는 것입니다. 파묵이 <소설가와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순수박물관>의 주인공 케말인 것으로 혼동하는 독자들은 무언가 착각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