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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ㅣ 밀란 쿤데라 전집 7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쿤데라의 소설을 읽다보면 난수표의 숫자들을 연결하듯 해서 집중해도 의미가 쉽게 정리되지 않은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불멸>이 그런 경우였는데, 그 독특한 구조 때문에 작가의 뜻이 쉽게 붙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 일곱편의 이야기들은 마치 독립된 단편소설처럼 읽히기 시작하지만, 어디선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팁이 숨겨져 있습니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큰 줄기는 쿤데라가 직접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데, 현대 파리의 헬스클럽 실내수영장 앞에서 아베나리우스교수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예순 근처의 부인으로부터 아녜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을 하나 둘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녜스와 남편 폴, 아녜스의 동생 로라와 그녀의 애인 베르나르 베르트랑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큰 줄기 사이에는 괴테의 주변을 끊임없이 돌고 있는 베티나 브렌타노로 인하여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그리고 있는데, 저자는 소설의 제목이 되고 있는 <불멸>의 의미를 괴테의 말을 빌어 직접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괴테가 말하는 불멸은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른 불멸, 사후에도 후세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자들의 세속적인 불멸이다.(81쪽)” 쿤데라는 자신의 고향 모라비아의 기억을 떠올려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생각하는 불멸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또한 쿤데라는 사후세계에서 괴테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만나 불멸의 존재가 된 사람이 세인의 갑론을박으로 얼마나 불편한지 따지기도 합니다.
쿤데라가 논한 불멸의 의미를 새기다 우연히 소설가 오정희선생님께서 조선일보의 [101 파워클래식]에서 박경리선생님의 <토지>를 읽은 느낌을 “원고지 4만 장에 ‘뭇생명’ 담고… 박경리는 그렇게 ‘불멸’이 되었다.”라는 제목으로 적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오정희선생님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또한 떠나고 기억을 간직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모두 사라지고 난 후에도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창조한 세계는 살아 숨 쉰다. (…) 필멸의 작가는 그가 창조한 세계로서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리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세인들이 불멸의 존재가 된 작품은 잊고 작가의 시시콜콜한 삶을 떠들게 될 것을 우려하는 듯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책들이 불멸하리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죠.(345쪽)”
작가는 메인 스토리와 연결되는 보조 스토리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영역의 역사적 인물들을 이끌어 이고 있습니다. 아녜스와 로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아내 갈라를 인용한다거나, 앞서 언급한 헤밍웨이를 비롯해서 소설가 로맹 롤랑,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폴 앨뤼아르, 음악가 베토벤에 이르기까지...(이런 분위기는 보르헤스의 단편들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쿤데라는 이들을 인용하는 것은 괴테와 베티나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들은 괴테에게 향하는 베티나의 감정이 사랑이었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지만 쿤데라는 그녀를 쇠파리같이 귀찮은 존재였다는 괴테의 입장에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매개가 되어 괴테는 “베티나가 그를 실제로 사랑했으며, 그녀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부당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327쪽)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인물인 아녜스는 네 번째 이야기가 되는 ‘호모 센티멘탈리스’에서 갑작스럽게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충격을 안겨줍니다. 이런 이야기의 진행은 아녜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폴과 로라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녜스가 끔찍하게 죽은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로라가 고통에 짓눌린 폴을 방문했다. ‘폴, 이제 이 세상엔 우리뿐이군요.’하고 그녀가 말했다.(328쪽)” 사실 로라는 형부 폴에 대하여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언니의 존재 때문에 접게 된다는 느낌을 여러 번 시사하고 있습니다. 폴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마지막 이야기에 등장하는 루벤스라는 이름의 남자가 파리를 방문할 때면 만나던 류트의 여인이 바로 아녜스였다는 점도 놀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자(話者)의 역할을 하고 있는 쿤데라는 작품 곳곳에 직접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카메오로 등장하듯이 말입니다. “술집 주인이 말했다. ‘쿤데라 선생은 좀 늦을 겁니다. 기다리는 동안 기분전환이나 하라고 이 책을 두고 가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폴리오’라는 보급판으로 발행된 나의 소설 <삶은 다른 곳에>를 그에게 내밀었다.(250쪽)”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9723>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하여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355쪽)”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직접 등장(?)하여 “소설은 사이클 경주를 닮을 게 아니라, 많은 요리가 나오는 향연을 닮아야 해.(382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또한 <농담>의 성격에 대하여도 “소설 속의 소설이고, 내가 써 본 것 중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가 될 것(382쪽)”이라고 말하면서 이 소설의 제목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등장인물 사이에 복잡하게 펼쳐지는 복선과 미로찾기에 흥미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할 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