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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솔루션 - 갈등과 위기를 해소하는 윈-윈 소통법
아론 라자르 지음, 윤창현 옮김, 김호,정재승 감수 / 지안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북소리에서는 가급적이면 의료와 관련이 있는 책을 소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읽고 다른 곳에서 리뷰를 공개한 책은 피한다는 소소한 원칙도 있습니다. 사실 이 코너를 통해서 꼭 소개하였으면 하는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호교수님과 정재승교수님이 같이 쓰신 <쿨하게 사과하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147514>인데, 이미 다른 곳에 리뷰를 소개한 바 있어 아쉽습니다.
<쿨하게 사과하라>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과’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유교적 전통이 뿌리 깊은 동양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사과는 패자의 변명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젠 진정한 사과는 “패자의 변명이 아닌 리더의 가장 쿨하고 현명한 전략”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는 이유였습니다.
두 분은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사과에 대해 신경과학에서부터 경영학까지, 의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까지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살피고, 이 이론들을 적용하여 국내외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과 사과사례들을 분석해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개선방향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자들 가운데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만, 이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의료과오로 인한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사과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흔히는 의료과오관련 분쟁이 있을 경우 사과를 하게 되면 수세에 몰리게 된다는 생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자들은 “사과는 비용이 많이 드는 비즈니스의 ‘자살골’이다”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달아서 의료과오분쟁을 쉽게 해결하는 방안이 진솔한 사과를 먼저 하는 것이라는 제안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즉 ‘진실말하기와 쏘리웍스’가 의료소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란 주장입니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사과는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다음의 사례를 보면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수련과정을 마치고 병원의 신임스태프로 임용이 되신 선생님들을 위하여 마련된 교육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임상에서 환자를 진료하는데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의 강사 가운데 변호사로 일하시는 분이 담당하신 ‘의료사고로부터 배우는 분쟁예방법’이란 제목의 강좌가 특히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변호사님은 근무하시는 병원에서 실재로 발생했던 사건을 인용하면서, 사건발생의 원인, 경과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나쁜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단계별 주의사항 등을 족집게과외 하듯 설명해주셨습니다.
특히 초기대응이 중요하다는 말씀과 함께,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우선 구두로 그리고 문서로 정리하여 상급자와 관련 부서에 관련 사실을 알려 상황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료기록부에 대한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더 중요한 점은 환자 측에서 진료기록을 복사해간 후에는 가필이나 정정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환자측과 대화를 하거나 관계자와 협의를 하는 경우에 단일 창구를 통하여 진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불필요한 대화를 자제하고 과실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지 않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아론 라자르교수의 <사과 솔루션>은 ‘갈등과 위기를 해소하는 윈-윈 소통법’이라는 부제처럼 사과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종합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과의 의미와 가치, 가해자와 피해자 입장에서 중요한 요소, 성공하는 사과의 조건과 절차, 사과의 동기와 회피 및 지연의 이유, 사과 조건에 대한 협상, 사과와 용서의 관계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앞서 설명한 의료과오분쟁과 관련된 사과처럼 특별한 요소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사과에 관한 원론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독자는 각자의 사정에 맞게 이해하여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사과’란 “일방, 즉 가해한 측이 자기 잘 못이나 그가 얻게 된 원성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를 본 상대에게 후회나 양심의 가책을 표현함으로써 양측 당사자들이 조우하는 것”(48쪽)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사과에 사용되는 단어와 상황에 따라서는 동정이나 유감의 뜻으로 변질되거나 오히려 사과의 의미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과의 과정 역시 사정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1) 잘못에 대한 인정, 2) 해명, 3) 후회, 수치심, 겸허함, 진심 등을 포함한 다양한 태도와 행동거지, 그리고 4) 보상으로 구성되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각 부분의 중요성이나 필요성까지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해자의 사과의 뜻이 피해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되려면 피해당사자가 요구하는 다음과 같은 심리적욕구들이 전체가 아니더라도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1) 손상된 자존심과 명예 회복, 2)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믿음, 3) 피해자는 잘못 없다는 확인, 4) 미래의 안전에 대한 확신, 5) 가해자의 심적 고통을 목격, 6) 손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 7) 상처를 표현할 의미있는 대화 등입니다.
진솔한 사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데, 경우에 따라서는 실망스럽고, 거슬리며, 모욕적이고, 또 때로는 헛웃음에 나오게 만드는 사과에 머물고 마는 것이지요. 1) 애매한 인정, 2) 수동적 표현, 3) 조건부 설정, 4) 피해를 의심, 5) 잘못을 축소, 6) 교만한 태도, 7) 잘못된 대상에게 사과, 8) 엉뚱한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126쪽)에 이런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사과 솔루션>에서 저자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잘된 사과 혹은 잘못된 사과의 사례를 다양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앞서 말씀드린 잘못된 사과 가운데 조건설정에 해당하는 닉슨대통령의 사임연설에 포함된 사과부분과 고칠 점을 소개합니다. “저는 이 판단을 낳게 한 일련의 사건에 있어서 행해졌을지 모르는 어떠한 피해에 대해서도 깊이 후회합니다. 만일 제 판단이 일부 잘못됐다면, 그리고 일부는 잘못됐지만, 그것은 당시 제가 국익에 최대한 부합한다는 믿음으로써 행한 일이라는 점만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132쪽)” 읽으면서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만, 한마디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목입니다. 만일 저자라면 “제 잘못된 판단으로 결국 국가에 해를 끼친 점을 깊이 후회합니다. 제 행동이 최대한 국익을 고려한 것이었다고 당시에는 믿었지만,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133쪽)”라고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비교해보시면 더 간략하면서도 같은 핵심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연결해야 듣는 이의 마음에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살면서 한번쯤 진솔하게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해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게 되면 대체적으로 피해를 입은 분도 사과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 저질렀던 잘못을 당시에는 분위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과에 마음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었다는 후회와 함께 언젠가 이를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외할머님께서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실 때 집안일을 돌보아주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조금 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는 외할머님의 불평이 나오면서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하루는 늦은 오후까지 식사를 하시지 못했다는 외할머님의 말씀에 화가 치밀어 따지다가 그 여성의 뺨을 때리게 되었고, 경찰서까지 불려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할머님께서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혈관성 치매의 초기증세를 보이셨을 가능성이 있는데 40년 전에는 전혀 모르던 일이었던 것입니다. 졸지에 모욕을 주고 폭력까지 행사하였으니 생사람을 잡은 셈입니다. 치매를 공부하고서야 잘 못을 깨달았으니, 그 분께 늘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역시 상황에 몰려 했던 사과를 거절당한 경우도 있어 무언가 목적이 있어도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할 것까지는 없었다고 후회하고 있기도 합니다. 당연히 진급을 했어야 하는 기회에 주임교수님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어 실패하고는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는 바람에 10년 가까이 전임강사로 지내다가 조교수 승진과 함께 퇴직을 하게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퇴직한다고 하니 그때서야 교실이 벌컥 뒤집어졌는데 어쩌면 놀란 척 하고 말리는 분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교실을 떠나고서 6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산하병원에서 같이 일했으면 하는 요청이 있었는데, 교실의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주임교수님을 찾아뵙고 무릎을 꿇고 사과를 드린 다음 선처를 부탁드렸는데 과장님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미루었고 결국은 과장님으로부터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을 듣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사과했던 것이 잘못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때 진급을 할 수 있도록 챙겨주지 않아 결국은 퇴직에 이르게 된 것을 사과받았어야 옳다는 생각입니다. 한분은 돌아가시고 또 한 분은 퇴임하시고 해서 이제는 책임질 분도 없고, 그 분들도 아마 잊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가 피해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뒷끝이 좀 있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풀지 못하는 사과와 관련된 사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사과에 관한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아론 라자르 교수의 <사과 솔루션>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료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프레임으로서의 사과를 어떻게 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고 한다면 더그 워체식 등이 쓴 <쏘리 웍스>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쏘리 웍스란 용어는 처음 듣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의료를 행함에 있어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겼을 때 진실 말하기, 공감의 표현, 적절한 사과와 보상 등을 함으로써 무의미한 소송으로 인한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의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작업을 쏘리 웍스라고 한답니다.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태가 나빠지게 되는 경우 흔히 의료진의 잘못 때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이유는 환자의 질병에 관련하여 곁들여 일어나는 다른 질병, 즉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준비된 행위가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이르거나 혹은 잘못된 계획의 결과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의학적 타당성이 결여된 잘못된 치료계획의 결과로 나쁜 상황에 이르게 되는 의료과오와 합병증과는 분명 차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정이 제대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며, 의료과오에 의하여 나쁜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 쏘리 웍스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