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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 미술비평은 어떻게 거장 화가들을 능욕했는가?
로저 킴볼 지음, 이일환 옮김 / 베가북스 / 2012년 6월
평점 :
의학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음악과 미술분야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할 수준이라서 안타깝습니다. 물론 의학을 공부하면서도 음악과 미술분야에도 전문가 수준으로 활약하시는 분들이 많아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라도 가게 되면 그곳에 있는 박물관 혹은 미술관은 꼭 찾아서 감상하는 것은 나도 그곳에 가보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체면치레용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는 평론을 읽게 되면 당연히 ‘그렇구나!’ '아하! 이렇게 해석하게 되는구나‘하고 감탄하게 되니 귀가 얇은 것이라기 보다는 눈아 얇다고 해야 되나요?
그런 저의 편견을 깨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로저 킴볼의 <평론, 예술을 엿 먹이다>입니다. 예술이라고는 번역하였지만, 미술평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담은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비판의 정도가 상궤를 넘어 충격적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리뷰의 제목을 ‘평론을 난도질하다’라고 적게 되었습니다.
“능수능란한 글 솜씨와 화려한 미사여구로 무장한 일부 평론가들의-특히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누리고 있는 일부 평론가들의-지나친 정치의식 또는 정치적 의도가 예술 행위 자체를 중심에서 밀어내버리고 마치 자기네들이 주체인 양 행세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김태호교수님은 추천사에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학구적인 예술사의 본질이 어떤 식으로 점차 (페미니즘, 후기식민주의 연구,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등) 학계의 여러 가지 급진적 문화정치의 볼모로 붙잡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곱명의 거장 화가들과 그들의 걸작들이 오늘날 몇몇 예술비평가와 철학자들에 의해서 터무니없이 재해석되고 진보적 이념의 환상에 끼워 맞추어지는 역겨운 모습이 저자의 재기발랄한 문제초 여지없이 폭로된다.”고 출판사는 요약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는 왜 예술사를 가르치고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답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해 배우기 위함은 물론이고, 예술이 전개된 문화적 배경에 대해 배우는 것, 예술의 발전에 대해 배우는 것, 그리고 역사의 진행에 따라 예술가들이 어떻게 ‘문제들을 풀어갔는가’에 대해서 배우기 위함이다.(26쪽)” 그런데 “그 예술사가 근본적으로 ‘정치적 개입의 한 형태’라는 관점에 대해 반격을 가하고자 하는 책(57쪽)”이라고 저자 스스로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술작품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달리 해석할 여지가 많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만큼 이해한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의적 해석도 정도껏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특히 대가의 작품을 제멋대로 찟고 발기는 행태는 눈뜨고 봐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 평론을 평하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평론을 평하는 수준을 넘어서 난도질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는 말씀을 숨길 수 없습니다.
저자의 감시망에 걸린 평론은 쿠르베, 마크 로스코, 사전트, 루벤스, 윈슬로우 호머, 고갱 그리고 반 고호에 이르고 있으니 그림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제가 보아도 놀라는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쿠르베일까 궁금했는데, 쿠르베의 작품을 평한 존즈 홉킨즈 대학교 마이클 프리드교수는 전방위적인 해석의 왜곡과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이란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에 쿠르베의 작품이 선두에 오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최근에 연재를 마친 칼럼에서 다른 분의 글을 인용하여 조목조목 따져들어가는 형식을 취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자 역시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어 문제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리드교수는 (…) ‘쿠르베가 연극적인 것을 패배시키기 위해 취해야만 했던 방법들은, 그가 생산했던 예술이 흔히 구조적으로 여성적인었다는 것을 표했다.’고 주장한다.”라고 인용하면서 ‘구조적으로 여성적인 예술’이 도대체 뭐고, 그렇다면 ‘구조적으로 남성적인 예술’은 또 뭐란 말이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에 대한 저자의 거칠고 날선 비판은 읽는 사람의 흥미를 끌어올리는데 충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읽다보니 참 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바로 사전트의 작품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을 주목할 많한 그림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저자가 이 그림이 바로 보스턴미술관에 걸려있다는 친절한 소개까지 곁들였는데, 불과 몇 주일 전에 방문했던 보스턴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사뭇 가물가물하다는 것입니다. 미리 이 책을 읽었더라면 사진도 찍고 더 자세히 살펴볼 걸 그랬다 싶습니다.
'The Rape of the Masters'라는 상식 밖의 제목을 <평론, 예술을 엿 먹이다>라는 거침없는 제목으로 옮긴 옮긴이의 기발함도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미술 평론 역시 회의주의적 시각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도판을 책 한가운데 모아 둔 것입니다. 각각의 그림을 왜곡해서 해설하고 있는 부분에 넣어 쉽게 그림을 열어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