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읽은 <마약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789709>에서는 인류가 마약을 이용해온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동물 역시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약성분을 함유한 생물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약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심지어 메케너는 실로빈과 같은 환각성 알칼로이드를 함유한 향정신성 식물들이 지닌 특수한 능력을 발견하고 섭취한 원숭이에서 뇌기능이 발전하여 진행된 진화의 결과로 인류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마약원숭이가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마약의 역사>에서는 유럽의 제국주의국가들이 아시아와 신대륙에서 경제적 이권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을 주요 교역수단으로 활용한 적이 있고, 미국 역시 남미를 포함한 제3세계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마약생산과 유통에 깊숙한 관련을 맺었다는 사실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쿠바커넥션, 프렌치커넥션, 피자커넥션 등 냉전의 부산물로 물밑에서 긴밀하게 밀고 당기던 국제정세 속에서 마약은 중요한 거래의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아일랜드계 작가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바로 멕시코를 중심으로 하여 미국의 남부지역, 그리고 컬럼비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마약거래의 커넥션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핵심 마약거래조직 바레라 카르텔이 부상해서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바레라 카르텔의 상대는 미국 법무국 마약단속국의 CIA출신 요원 아트 켈러입니다. 미국인 아버지가 멕시코에서 만난 어머니와 결혼해서 태어났지만, 일찍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게 된 켈러는 세상을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됩니다. 가족, 특히 아버지의 역할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주관을 세우고 살지만, 한때 자신이 전체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결정한 선택이 가져온 커다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는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개의 힘>은 1975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대대적인 아편농장 소탕에 이어 아편을 생산하여 유통시키는 카르텔의 대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바레라 카르텔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부상하여 2003년에 몰락하기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씨줄로 그리고 뉴욕, 샌디에고, 멕시코, 그리고 컬럼비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날줄로 촘촘히 엮어 한편의 장대한 서사를 그려낸 작가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끈질긴 기질이 힘이 되었을까요?

 

1부에서는 마약 단속반 아트, 마약 조직 보스 아단, 고급 매춘부 노라, 킬러 칼란 등 네 주인공들이 서로 얽히는 과정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우연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드는 세상사가 사실은 필연적으로 얽히도록 조정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작가는 멕시코에서 마약이 생산되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쿠바사태로 놀랐던 미국정부가 중남미국가들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공산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마약조직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고, 중남미 국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 예를 들면, 1988년 제도혁명당 선거 조작 의혹, 1989년 유력 후보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 암살, 또 다른 유력 후보 베르나르도 하라미요 오사 암살, M-19 대통령 후보 카를로스 피사로 암살,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암살 사건, 과테말라 오스카 로메로 신부 암살 등과 같은 실제 사건들을 이야기 속에서 재현하여 긴박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흔히 숙명의 라이벌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한창 피끓는 나이에 멕시코 시날로아에 부임한 미국정부의 마약단속반원 아트가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다가 우연히 체육관에서 만난 아단과 인연을 맺고 당시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아편의 유통을 한손에 쥐고 있던 돈 페드로 아빌레스를 제거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리면서 부서의 핵심요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바레라 카르텔의 티오가 이 과정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작가가 손자병법을 따로 공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입니다. 미국 정부와 멕시코정부의 합동 마약단속반의 힘을 빌어 멕시코를 장악하고 있는 마약카르텔을 무너뜨린 다음 흩어진 조직을 새롭게 짜낸다는 전략입니다. 특히 양귀비 재배의 특성상 지력을 소생시키기 위해서 양귀비밭을 엎어야 할 상황이었고, 오랜 가뭄이 찾아들 조짐이 보이는 시점이었으니 바레라 카르텔의 파트론은 천시와 지리를 읽을 줄 아는 대단한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개의 힘’은 무엇일까요? 바레라 카르텔을 세운 티오가 아트를 개처럼 이용해서 자신의 적을 덮치게 했고, 덕분에 아트는 조직에서 영웅이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개자식이라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 대가로 판 영혼을 다시 되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내와 아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지요. 아트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