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의 역사
조성권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전공은 마약과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이지만, 마약관리에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 일할 기회가 적지 않았던 탓에 마약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였지만, 막상 찾아보면 쉬운 우리말로 되어 있는 책자를 찾아보기 어려워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마약에 관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 조성권교수님의 역저 <마약의 역사>는 관련 분야의 일을 하는 분들께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쓰거나 강연을 준비할 때 흔히 적용하는 방식이 바로 관련 주제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관련자료를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혹은 주어진 여건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해본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다소 딱딱하지만 학문적 접근방식에 충실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런 체제로 쓴 책들은 대체적으로 딱딱할 수밖에 없어 일반인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한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주제에서 그 역사적 기원을 뒤쫓다보면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마약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근거를 내놓고 있습니다. 바로 메케너의 마약원숭이가설입니다. 인류가 진화되어 나오기도 전 단계인 원숭이 단계에서 실로빈과 같은 환각성 알칼로이드를 함유한 향정신성 식물들이 지닌 특수한 능력을 발견하고 섭취하여 자신의 뇌를 자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화론의 일반적 원리를 적용해보았을 때 지나친 주장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인류가 마약과 함께한 세월들을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마약에 대한 인간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내려왔는지 추구하고 있습니다. 원시시대에 있어 마약은 종교적 의미 혹은 신성한 의미를 담은 주술적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는 샤먼이 영적 존재와 접촉을 유도하기 위한 망아상태에 이르기 위하여 특정한 마약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용되어온 마약을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옮겨온 사람들은 그리스의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 의학이 인류에 기여한 점은 신의 가호에 의지하던 질병의 치료를 의사라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집단의 전문화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조직적 접근으로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특히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을 종교로부터 분리하여, 질병이 신의 분노로 생긴다는 관념을 신체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결과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마약 역시 마법이나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치유력을 회복시키는 도구로서 간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까지 마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긍정적인 경향으로 육체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용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힘의 추가 제국으로부터 기독교로 넘어가면서 마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양시키게 되었는데, 그 이론적 배경은 육체적 혹은 심리적 고통 역시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숙명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기 위하여 마약을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근대에 이르러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사회가 신대륙과 구대륙으로 영향력을 확산하는 시기에 아편 등 마약을 노동력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하거나 특정 계층의 향락을 구하거나, 혹은 아편전쟁과 같이 특정국가들 대상으로 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마약의 사용이 일상화되어 지구적 문제로 부상하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은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마약의 사용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하게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마약류의 공식적 유통을 금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규제조치는 거꾸로 마약의 유통이 비정상적 경로를 통하게 됨에 따라 가격이 폭등하고, 국제적인 테러조직이 개입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미국 작가 돈 위슬로가 쓴 소설 <개의 힘>에서는 미국사회에 마약을 공급하는 국제조직과 이를 차단하려는 미국정부가 전개하는 엄청난 규모의 전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만, 그 이면에는 미국정부가 자국을 위협하는 공산주의세력의 싹을 자르려는 물밑작업의 일환으로 마약의 유통을 허용하는 이중적 행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어 마약의 유통을 통제하는 일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와 관련된 정황은 이 책의 7장과 8장에서 다루고 있는 20세기 전후반 마약과 관련한 국제정세에 담겨 있습니다.

 

최근 들어 물질적 풍요를 얻게 된 미국사회에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한다는 논리로 자유로운 마약의 사용을 요구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치료용 목적으로 마약, 특히 마리화나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일각에서도 말기 암환자의 통증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 등 치료용으로 마리화나의 사용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분명 마약은 인간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좋은 것이 될 수도,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약의 역사>는 마약사용에 대한 인식의 눈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간혹 오자가 눈에 띄는 등 편집과정에서 조금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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