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실이 중요한 이유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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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에 의해서 자행된 학살의 피해자가 1,100만이나 된다는 끔찍한 사실을 다시 새기는 순간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확인해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폰더씨’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 앤디 앤드루스를 잘 모른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하겠습니다.

 

<How do you kill 11 million people?>이라고 된 영어 제목을 보면 ‘내가 그렇게 엄청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게 됩니다. 권두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제가 알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게 없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모임에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왔는데 아마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였던 같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네편 내편이 아닌 우리 편이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나라의 시각에서 보면 ‘사꾸라’라고 불릴만하단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고나서는 정치판의 그런 요구를 받아온 저자가 미국식 정치현실의 문제를 독자들에게 깨우치기 위해서 쓴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무려 1억 명의 미국인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사람들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어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5년간 미국 대선에서 1,000만표 이상의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1억명을 향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가 1,100만명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힘을 쥔 자가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눈감았던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태인만이 홀로코스트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1,100만명의 피해자 가운데 500만명은 유태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제국은 처음부터 유태인을 학살하겠다고 공언하고 그들을 수용소로 끌고 갔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련을 팔아 유태인을 보호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속여 수용소로 끌고 갔고, 시간이 흘러 수용소의 비밀이 어느 정도 알려진 다음에도 이런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인정아래 끔찍한 일이 계속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히틀러의 제3제국이 저지른 만행을 중심으로 상황을 외면한 자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만, 그밖에도 캄보디아, 소련, 북한, 멕시코, 파키스탄, 발트 공화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자국 정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엄청난 숫자를 인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1,100만명을 죽이는 방법은 바로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란 생각이란 걸 안해. 그러니까 뻥을 크게 치라고. 쉽고 간단하게 말해. 계속 말하는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걸 믿는단 말이지.(53쪽)” 그런 거짓말이 통해서 학살이 시작되고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고 생각한 일반 시민들이 눈을 감게 되는 순간 학살은 광란의 극을 향하여 치닫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미국 의회를 채우고 있는 545명의 상, 하원 의원들이 모든 법을 만들고 예산을 계획하며 모든 정책을 만들어 전 국민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민주주의 실상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정치가 되어 범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선출할 때,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의 ‘행위’를 면밀히 보는 것이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발휘하여 제대로 행사해야만 제대로 대표를 선출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옛날 그리스에서처럼 모든 국민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던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직접 민주주의는 사실상 실시가 불가능한 현실이고, 또한 일반 국민의 생각이 한 방향으로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민의 지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어 대표성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이 선거이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 또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과 같이하는 대표에게 투표함으로써 시민 전체의 의견이 어떻다는 것을 분명하게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 말미에 붙인 옮긴이의 글이 시사하고 있는 편향성입니다. 저자는 6.25동란기간 남한정부에 의하여 학살된 민간인을 다룬 더 타임스의 기사를 비롯하여 김구, 조봉암 등 정치인사 암살 및 숙청, 여순반란사건을 포함한 수많은 학살, 제주 4.3항쟁, 4.19민주화혁명 등등 남한정부가 저지른 학살을 지적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비단 히틀러만이 아니라 히틀러 II, 히틀러 III들이 연달아 정권을 장악했고, 그들의 범죄는 종잇장처럼 얄팍한 처벌로 합리화됐고, 그들과 그 조력자들은 여전히 천지를 활보한다.(111쪽)”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의 오랜 민주화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투표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세계가 놀랄만한 민주화의 진정을 이뤄낸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세력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면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는 준엄함을 보인 대단한 국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끝난 총선과정에서 여야 모두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을 바로 잡는 노력을 보이는 쪽이 연말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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