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한길인문학문고 생각하는 사람 12
강영안 지음 / 한길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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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책읽기에 재미를 들이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국어사전적 의미를 굳이 따져본다면 나름대로는 역사와 문학 분야에는 관심을 두고 나름대로의 책읽기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철학’하면 일단 어려운 학문이다라는 지레짐작에 엄두를 내지 못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철학이 인문학의 3대 주류 가운데 하나인데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길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가운데 만난 강영안교수님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철학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 책이었습니다.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철학은 없다’는 답이 나올 것 같은 제목입니다. 실제로 저자는 “배울 수 있는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48쪽)”라고 단언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 우리사회의 구조적 갈등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사회과학과 철학 등 인문학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지만, 그 이후로 바뀐 학제의 영향을 비롯하여 사회환경의 변화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삶은 철학의 이유’라는 제목으로 한 서문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추어 철학과 인문학은 변신을 꾀하지만 음식으로 배부르고 몸이 편안한 상황에서 대중들이 귀 기울여줄 것이라 기대하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인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자와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마치 아테네 시민들을에게  쇠파리처럼 굴었듯이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귀찮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8쪽)”고 인문학자들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철학공부를 시작하나 싶기도 하고, 철학은 감히 엄두를 내기조차 겁나는 분야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일단 향도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1부 ‘철학의 얼굴’에서는 철학에 대한 생각의 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의 흐름을 볼 수 있게 해주셨고, 2부 ‘타인의 발견’에서는 삶에서 철학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전공하는 의학교과서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틀이기도 합니다. 즉, 총론을 통하여 해당 분야의 전체적인 개념을 정리하고 이어서 각론에 들어가서는 분야별로 상세한 설명을 하는 식인데, 여기서는 각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일상에서 철학하기라는 점에서 본다면 각론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앞서 저자가 “배울 수 있는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한 이유는 철학은 하나의 학설, 하나의 가르침,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삶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지는 각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깊은 사유를 통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연마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삶이 철학 자체이고 철학적 물음의 원천이라고 한다면, 저자는 “우리의 사유하는 능력(논증과 반론), 사유 능력을 적용하고 훈련할 수 있는 텍스트, 그리고 삶”, 이 세 가지를 철학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세기 유럽철학의 풍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근대 유럽철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1900년 후설로부터 시작한 현상학에서부터 1920년 빈을 중심으로 한 논리실증주의, 프랑크푸르트의 비판이론, 러시아의 형식주의에 뿌리를 둔 구조주의 등이 과학적 철학하기와 현실파악이 핵심을 이루었다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철학에 뿌리를 두었던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그 뿌리인 철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강영안교수님께서 인용하고 계신 철학 텍스트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놀랐습니다.

 

과학에 조금 관심을 가진 탓에 눈에 띈 구절입니다만, “사실로부터 규범을 얻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마치 ‘바위에서 물을 얻어내자는 것’(ex pumice aqua)과 마찬가지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109쪽)”는 인용이 적확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바위가 치밀해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위를 구성하는 원소에 물성분이 결합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부 ‘타인의 발견’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 한계로부터 유추되는 타인과의 관계가 논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윤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윤리는 결국은 철학적 사유의 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타인과 스스로의 고통을 다룰 것인가 하는 예시를 들고 있습니다. 1부는 철학의 원리를 설명하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은 읽는 호흡이 더디다 싶습니다만, 2부의 글은 아무래도 우리네 삶에서 보는 경우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읽히고 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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