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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와 윤리교육 ㅣ 내일을 여는 지식 교육 28
배영기.진교훈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1년 6월
평점 :
근래 의료인과 의과대학생들이 관련된 성추행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의료인에 대한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의과대학의 교과과정에 윤리교육을 포함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사의 삶을 성찰하고 직업철학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주목을 받은 사건들은 의료윤리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일반적인 윤리도덕에 관한 사항이라고 보입니다.
윤리교육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의 특성상 생명윤리에 관한 내용은 당연히 포함해야 할 것이나, 그밖에도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 및 윤리에 관한 사항도 있을 수 있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 및 윤리에 관한 사항으로까지 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과대학의 교과과정에서 다루어 예비의사들의 인성을 바르게 할 윤리교육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도덕, 윤리의 원칙을 설명한 도서 뿐 아니라 생명윤리를 다루는 도서 역시 영역에 따라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윤리 도덕교육을 단기간에 마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고,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꾸준히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도록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물론 의료행위와 관련된 윤리교육은 예비의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예과과정에서 다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윤리와 도덕관념에 대한 개략적 범위를 조망해볼 수 있는 책 <생명윤리와 윤리교육>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윤리학과 윤리교육에 관한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우리나라 윤리학계가 당면한 다양한 주제를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윤리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특히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 혹은 윤리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 열여덟분이 “윤리학의 본질과 성격”, “한국 사회의 현대윤리학의 과제”, “윤리교육론과 도덕교육의 방향”이라는 큰 틀로 나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기획한 분들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치관교육이 무시되고 있는 점, 특히 학교가 기능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반사회적, 반도덕적 인간을 길러내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사회변화와 더불어 상대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하게 되면서 기존의 가치기준이 무너졌지만, 바뀐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지 못함에 따라 사회적으로 아노미현상이 일어나고, 도덕적 무관심 내지는 불감증에 빠지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글머리에서 제기된 문제를 보면 윤리문제가 꼭 의료계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며, 기본적인 윤리교육의 부재에 따른 우리사회의 전반에 걸쳐 확산되어 있는 일반현상이라고 봄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저자들이 살펴보고 있는 윤리학의 본질과 성격에서는 윤리와 도덕에 관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의 흐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고, 어떻게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되는가?”하는 의문을 논하는 것이 윤리학이라고 한다면, 자연의 질서를 탐구해오던 자연철학에서 인간의 삶의 질서를 논한 소크라테스는 도덕철학의 시조(始祖)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논한 도덕철학으로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도덕철학이 논한 도덕적 삶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보인 도덕적 삶은 따로 조망해볼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커트 바이어는 우리의 삶을 행위가 이성에 일치하는 합리적인 삶, 도덕에 일치하는 도덕적인 삶 그리고 최상의 선함을 추구하는 선한 삶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들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서로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도덕성을 수단적 합리성으로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논의가 바이어로부터 시작되는데, 데이비드 고띠에에 이르러 공리(公利)라는 개념을 통하여 수단적 합리성이 도덕성을 얻을 수도 있다고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롤즈의 정의의 원칙으로 정리되었으며, 다시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마이클 샌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표제가 되고 있는 생명윤리에 관한 내용은 배영기 교수가 맡고 있는 ‘생명윤리에 관한 생태문화적 연구’ 한 편에 불과하여 다소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안락사 문제를 비롯하여, 장기이식, 배아복제, 대리모임신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생명윤리 이슈가 넘쳐나고 있지만, 의학, 법학, 철학 그리고 윤리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논의가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배영기 교수는 이와 같은 주제를 논의 범위에 포함하지 않고 생명에 관한 역사적, 철학적 그리고 종교적 이해를 논하였을 뿐, 미래에 다루어야 할 생명윤리의 이슈를 변화하고 있는 지구환경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박효종 교수가 롤즈의 정의의 원리를 고찰하는 가운데 제한적인 의료자원을 분배함에 있어 적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맥시민의 원리를 논하고 있어 의료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의료계에서도 관심을 둘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우리 사회가 처한 윤리의식의 위기상황과 도덕성 회복 방안을 요약해보려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는 불교에 기반한 인과응보와 자비의 윤리가, 조선시대에는 삼강오륜을 기초로 한 유교의 윤리가 사회적 행위의 중심윤리였습니다. 하지만 피동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과정에서 서양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결국에는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전통윤리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윤리규범이 만들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윤리의식의 혼란이 가중되고, 종국에는 도덕불감증이 만연하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진교훈 교수는 전통적 윤리규범을 단순하게 비합리적이고 수구적이며 보수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전통은 대체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축적되고 많은 수정과 보완을 거쳐 이루어진 사회질서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통문화 속에 담겨 있는 기본적 가치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사회구조에 맞는 새로운 가치기준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서양문화의 유입에 따른 동서 문화의 충돌로 야기된 문제인 만큼 우리의 전통 윤리의식과 서양의 윤리의식을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인식을 토대로 비교하는 연구를 통하여 우리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윤리기준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 하겠습니다.
서양의 역사에서도 “젊은이들의 행태를 보면 말세다”는 탄식은 끊이지 않았으며, 우리의 역사서에도 “강상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탄식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도덕과 윤리의 위기는 늘 논의되던 바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삼스럽게 윤리 도덕의 위기를 논하게 된 것은 최근들어 사건 사고의 빈도가 많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잔혹성이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지경인 까닭입니다. 이러한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서 국민들의 도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도덕성 형성은 개인적, 사회환경적, 제도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개별적 영역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종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들은 “인생의 의의는 참된 가치를 실현하는데 있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 곧 참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근본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사는 길을 안내하고 참된 가치를 가르치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교육의 근본정신이다. 참된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윤리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의 일각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의료계에 만연한 전반적인 윤리의식의 위기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도 의문이고, 그 책임이 의학교육제도의 결함이라고만 할 것인가도 의문입니다.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전통의 부재가 원인이라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