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죽다 - 정사情死의 정치학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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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사전에는 정사(情死)“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든가 또는 다른 사정으로 함께 자살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죽은 경우에는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한쪽이라도 살아남게 되는 경우 자살의 방조 혹은 교사 여부를 따져 자살관여죄(형법 제252조 2항)가 성립되며, 정사를 가장한 위계(僞計)·폭행·협박 등의 위력(威力)으로 자살을 결의하게 한 때에도 살인죄(제253조)나 미수범으로 처벌(제254조)된다고 합니다.

 

자살이라는 형태의 죽음이 때로는 동정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인데, 정사의 경우는 적지 않은 경우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정상이라고 하기 어려운 형태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어 죽은 이들의 사정이 타인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죽음의 형태에서 차지하는 정사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자료를 가지고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사에 관한 분석적 글을 읽기 어려운 이유일 것 같습니다.

 

‘정사의 정치학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이라는 부제를 단 <사랑하다 죽다>는 서원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박종성교수님의 이러한 정사의 한계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호사가들의 관음증을 자극하기 위한 주제가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정사사건을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해방이후로 구분하여 시대별 발생빈도나 사연들을 비교하였습니다. 앞서 논한 것처럼 정사 가운데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건들만 기록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사망신고에 따른 통계자료의 집계가 가능했던 일제강점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정사라는 죽음의 형태가 신고형식에서 구분해낼 수 없는 바, 조선시대에는 실록을 포함한 각종 기록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언론매체 등에 의존하여 자료의 수집이 가능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신분제가 엄격했으며 삼강오륜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적 윤리가 사회적 규범으로 통하던 때였던지라 사랑이 완성될 수 없는 관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유교적 윤리의식이 많이 퇴조하던 시절이었습니다만,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서구문화와 전통문화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일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江戶時代:1653~1868)의 관습과 규범의 속박으로 정사하는 사례가 많아 연극과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이런 풍조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심지어는 정사를 예찬하는 분위기가 일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 일기 시작한 의식구조의 대변화로 인하여 정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많이 줄기도 했지만, 정사를 시도할 만큼 절박한 사랑도 많이 줄어든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누군가와 사랑하다 함께 죽는 것보다 하루라도 더 죽도록 사랑하는 삶이 먼저”라는 정재복교수님의 말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때문일까요?

 

그런데 저자는 정사를 굳이 정치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굳이 같이 가려는 추구의지를 담았기 때문일까요? 설명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만, “사랑이 ‘관계’ 개념에서 파생하는 극히 자연적인 현상이자 하필이면 둘만의 선별적 정념이 빚어내는 감정의 숙성과정이라면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곧 ‘정치’다.(37쪽)”라고 명쾌하게 정의하고 나선 저자이고 보면 정치학을 전공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빚어낸 반짝이는 결정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는 실록 등의 자료를 통하여 도출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열녀’에 관한 기록을 시대상을 반영한 정사의 한 형태로 보았습니다. 유독 추종의 형태가 많은 열녀의 죽음은 나라에서 열녀문을 세워 그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등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은근히 죽음을 강요받았거나 살해 후 자살로 위장한 사례는 없었는지 의문이 생긴다는 점을 굳이 감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죽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대 아무리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랑하다 죽기’로 작정한 이들이 끝내 그 관문을 넘어서는 과정도 시대적 차이가 있을 것라 짐작합니다. 다만 다양한 정사의 방식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준 ‘떨림’과 ‘울림’의 인문학에까지 생각이 미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저자의 사념의 깊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정사의 시대적 변천과정을 비교검토하는 이유는 최근 들어 보기 어려운 정사를 예찬하고 권장하기 위함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색다른 주제를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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