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 과학과 사회, 두 문화의 즐거운 만남을 상상하다
강윤재 지음 / 궁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과학과 사회, 두 문화의 즐거운 만남을 상상하다’라는 함축된 요약을 붙인 강윤재교수님의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은 “ 이 책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 과학의 참모습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저자의 글을 통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즉, 저자가 대학에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 미리 정한 토론주제를 두고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정리하여 발표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진영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의 장이 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주관해온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가지고 토론을 펼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논리를 가다듬어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합의에 도달하거나 또는 그렇지 못하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찬성과 반대의 주장을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 정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두었어야 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고 느끼기에는 찬성과 반대의 논리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저자가 내린 판단이 행간을 완고하게 움켜쥐고 있어 독자의 판단을 자신이 내리고 있는 판단에 따라올 것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이라는 제목보다는 <내가 내리는 과학논쟁의 결론>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의 얼개를 옮겨보면, 1장과 2장에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을 논하고 있습니다. 3장부터 7장까지는 과거 과학계의 핫이슈들, 예를 들면,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을 통해본 과학과 종교와의 관계, 뉴턴의 천재성의 진실, 플로지스톤 이론과 연소이론의 숙명적 대결, 빛의 이중성 그리고 사회진화론 등입니다. 8장부터 13장까지는 현대사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과학기술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전자변형식품(GMO), 기후변화, 원자력발전, 우주개발과 로켓을 둘러싼 논쟁 등입니다.

 

저자는 섣부른 사회의 개입이 과학을 오염시키고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22쪽), 과학기술이 개발되고 나면 사태를 바로 잡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기술영향평가와 시민합의회의 등 다양한 시민이 참여하여 사전에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268쪽) 과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과학자들이 생산하는 새로운 이론은 동료평가를 통하여 참(true)이 검토되고, 어제의 참이 새로운 근거에 의하여 무너지고 새로운 참이 등장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참이라고 해도 동료평가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긴 세월동안 묻혀지게 되지만 언젠가 빛을 보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과학기술에 관한 논쟁은 과학자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기술영향평가와 시민합의회의는 누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설마 논의 대상이 될 과학기술을 판단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참여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지 않고 과학기술을 판단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었다고 한다면 그 분들은 이미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이 논쟁을 통하여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공연히 일반인들이 나서서 감놔라 배놔라 간섭을 하게 되면 우리가 필요한 지극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결론이 도출되기도 전에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일이 벌어질테니 말입니다.

 

한편 저자는 과학자가 전문지식을 적극 활용하여 사회의 요구에 올바르게 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만(40쪽),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개인적 성향에 따른 전문지식의 오용으로 인하여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때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한 역사적인 과학논쟁 부문에서는 이미 입장이 정리된 경우로 보여진 탓인지 특별히 자신의 판단을 노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문제에 있어서는 지난 해 발표된 스티븐 호킹박사의 <위대한 설계>를 인용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유전자재조합식품, 기후변화, 원자력안전성문제 등은 아직 찬반의 논리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기에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면, 양측의 주장을 동등하게 인용하는 것이 옳겠습니다만, 저자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항이니 불안하다는 쪽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으로 읽혀졌습니다. 또한 우주개발경쟁이 강대국들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던 분야로서 그 결과에 대하여 강한 회의를 제기하고, 특히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우주개발사업이 선진국 따라하기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방송위성이나 기상위성을 띄우기 위하여 선진국의 로켓발사 일정에 끌려 다니다가 결국은 그들의 시장에 편입되어 고액의 사용료를 물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국가안보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벽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과학과 사회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과 사회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인도하는 좋은 참고서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도 공감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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