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역사 - 고대에서 르네상스까지 서양 역사에 나타난 노년
조르주 미누아 지음, 박규현.김소라 옮김 / 아모르문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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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씨는 11월 16일 충북 제천 기적의 도서관에서 있은 문학강연을 통하여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최근의 ‘현실정치’에 대한 소회를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꼰대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고 요약하면서도 “(선거 결과가) 세대 갈등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류의 모습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 모습이 요즘 너무 극대화된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고 18일자 중앙일보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 11일 배포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연수교육 자료에는 “노인한테 자리를 양보하기 싫고 노인이 TV 뉴스만 보기 때문에 고령 사회가 싫다는 식”의 노래 가사가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어느새 어르신들이 우리사회의 공적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현실정치는 뒷전이고 기성세대를 몰아내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거대한 폭풍으로 뭉쳐지는 듯한 불안한 전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사실은 청년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직은 더 일할 수 있는 나이든 젊은이(?)들에게 명예퇴직이라는 감투를 씌워 일터에서 내쫓은 것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3D업종으로 분류되는 일자리는 돌아보는 젊은이가 없어 외국인 근로자를 수입해서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분명 우리나라의 사회교육제도에 커다란 결함이 진즉부터 생겨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노동의 현장은 장년층이 틀어쥐고 아직은 일자리가 필요한 나이든 젊은이들을 내쫓고 새로운 일자리에 진입해야 할 새파란 젊은이들을 막고 있으면서 책임은 엉뚱한 곳에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기업과 정부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기업하기 어려운 사회환경을 조성하는데 매진해온 것 아닌가 뒤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든 고령화사회에 이미 진입했고, 초고령화사회로의 진입도 머지않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고령화속도가 빠른 것이 현실입니다. 보건의료분야의 빠른 성장으로 기대여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반면, 육아에 대한 부담을 회피하려는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미루는 바람에 출산율이 가장 낮은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현상의 최종적인 부담은 앞으로 장년이 될 젊은이들의 몫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노인들의 사회적 위치나 노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오늘의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미누아가 고대로부터 르네상스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노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망라하여 정리한 <노년의 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프랑스 역사학자인 장 들뤼모는 추천사를 통하여 노년에 관한 방대한 양의 사료를 샅샅이 검토하고 적절하게 선택된 사례들과 매우 빼어난 표현으로 가득 찬 간결한 문체로 정리한 조르주 미누아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문학과 예술은 물론이고 고대의 의학 서적, 묘비명, 중세의 각종 기록들, 교황과 왕에 대한 자료들을 토대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에서 시작해서 ‘근대의 입구’인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서양 역사에서 노인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조명하여 서론에 이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고대에서 르네상스까지 서구의 역사는 노인들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의 변동을 보여준다. 우리는 계속되는 후퇴보다는 불규칙한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하지만 대체적 경향은 쇠퇴를 향하고 있다. (…) 각 사회에는 그에 상응하는 노인들이 있고, 고대와 중세의 역사는 이를 광범위하게 보여준다. 각각의 사회․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조직 형태는 노인들의 역할과 이미지에 대한 책임을 맡는다. 각 사회는 이상적 인간의 형태를 전파하며, 노년의 이미지와 노년에 대한 폄하 혹은 부각은 그러한 형태가 어떤 것이냐에 달려있다.(43~44쪽)”

선사시대에는 아무래도 집단에서 구할 수 있는 식량이 풍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라 식량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식량확보에 기여할 수 없는 노인들은 유기되거나 죽음을 맞게 되는 경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사회의 기대여명이 그리 길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연령을 노년으로 분류했을지는 미지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시대에도 아름다움과 힘, 젊음을 추구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노인들이 그리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학자, 정치가들이 연로할 때까지 활약한 것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미누아의 역작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역사적으로 노인들이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했던 시절은 두 번 정도였다고 합니다.

원로들이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로마시절과 유럽이 흑사병의 대유행으로 초토화된 직후인 14~15세기였다고 합니다. 로마법에는 가장에 대한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는데 한 집안의 가장은 대부분 노인들이 맡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흑사병은 전염병의 특성상 어린이와 젊은이 층에서 피해가 컸는데, 그것은 후천적으로 얻는 면역은 아무래도 나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흑사병의 유행에서 살아남은 노인들은 마침 유럽에 일어난 상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쥘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러한 역학관계가 오히려 독이 되어 젊은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세대갈등을 촉발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요즈음의 사회분위기와 흡사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기대여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대에서 노인들이 사회악으로 내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오랜 삶에서 얻은 지혜가 젊은이들이 사회화되는 과정에 보탬이 되고 세대간의 갈등이 조장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라 생각합니다. 노년의 역사를 통하여 과거에 일었던 세대간의 갈등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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