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환갑의 딸이 파킨슨병과 치매가 함께 온 어머니를 7년동안 간병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정리한 책입니다. 출산율이 세계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에서도 멀지 않은 미래에 겪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치매에 관한 책을 쓰면서 환자를 간병하는 분들이 부딪히게 될 어려운 상황들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돌보며>를 쓴 저자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는 투병기간이 길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변화를 보이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간병에 나서면서 준비를 충분하게 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캔사스 사는 저자 오언스는 멀리 텍사스에 사는 어머니와 규칙적으로 안부전화를 드리곤 하는데, 파킨슨병으로 진단받은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급히 고향집으로 찾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방문하는데 알츠하이머병이 겹쳤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저자는 처음에 어머니의 병원 진료 날짜와 투약 상황 등을 챙기기 위해 간병일기를 적기 시작하다가 불치의 병을 간병하고 있다는 그 '혼란의 늪 속에서 어떤 의미라도 건져 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병에 걸린 사람을 간병하는 일을 배우자 다음으로 딸이 맡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미처 챙기지 못할 수 있는 것은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이 같이 하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입니다. 파킨슨병환자는 일반인에 비하여 알츠하이머병이 올 확률이 높고, 거꾸로 알츠하이머병 환자 역시 파킨슨병이 올 확률이 일반인에 비하여 높습니다. 두 질환이 모두 신경세포가 노화하는 속도가 정상인보다 빨라져 생기는 병입니다. 특히 저자의 어머니는 ‘열공상태’라고 부르는 미니뇌졸중으로 뇌의 여러 부위가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열공상태는 특히 고혈압을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은 경우에 나타나는 병리현상입니다. “폐경기 이후에 에스트로겐을 외부에서 보충하는 것은 자연적인 질서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믿어서, 몸이 에스트로겐 생산을 중단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신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보살필 필요는 없으며, 노인의 호르몬 수치를 이십대 여성과 같게 유지하는 일은 자연의 의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39쪽)”고 적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자신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일에 소홀하신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간병하는 사람들에게) 불안을 줄여주거나, 고통을 덜어 주지는 못한다 해도 마음을 단단히 먹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서문에 적었습니다. 저의 솔직한 판단으로는 이 책은 치매와 같은 만성질환 환자를 간병하시는 분들이 읽으실 때, 따라 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는 “미친 듯 정보를 찾아다니던 일을 그만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모은 파킨슨 병에 관한 모든 자료와 책을 서랍에 넣어버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44쪽)”고 한 행동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간병할 대상이 앓고 있는 질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를 확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료진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듯 여러 의사를 돌아다닌 듯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다양한 분야의 의료인 및 요양기관에 대한 평가결과를 일반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하여 하던 일을 중단하고 고향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같이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요양시설에 어머니를 모셨을 때는 어머니가 시설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의존성을 더욱 키우는 방향으로 행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의 병환이 진행되는 상황과 간병하는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였는지를 세밀하게 적은 것으로 독자들이 느끼는 감동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만,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뇌기능 등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의 글들은 독자들이 읽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어머니와 의논하는 장면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의 인식 수준이 사후처리를 의논하기에 적절하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오랜 기간을 앓다가 죽음에 이르는 만성질환을 간병하는 분이 특히 새겨야 할 점은 자신이 건강해야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이 녹내장을 비롯한 건강상의 문제가 드러나고 간병에서 오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듯한 인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형제를 비롯하여 주변에 도움을 줄 친지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부담을 적당히 나누려는 노력을 볼 수 없습니다.

“물론 나도 너와 네 어머니가 아주 가까웠다는 건 알아. 하지만 지치지 않게 적당히 하는 것이 좋아. 이 일을 앞으로 얼마나 계속해야 할지 모르잖아.(153쪽)”라는 친구의 조언에 대하여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153쪽)”는 답변을 적은 것으로 보아 힘들 수밖에 없는 효율적 간병을 위한 전략적 판단 보다는 감성적 접근이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혹시 가까운 분을 오랫동안 간병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면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접근방식은 절대로 추천할 수 없습니다. 환자를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간병하는 본인도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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