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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편집된 진실을 말하다
이상훈 지음 / 지식갤러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기자 편집된 진실을 말하다>는 서울경제신문의 이상훈기자님이 기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에 널려 있는 정보로부터 진실에 접근하는 법을 안내하기 위하여 쓴 책입니다. 즉, 신문기자로서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에 천착해서 나온 성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진실 추적의 길목에서 만나는 복병들’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2010년 9월 배추값 파동을 취재하여 기사화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우리가 어떤 사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접근, 진실을 추적해 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속살을 보려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 그것도 아주 양질의 수준을 가진 전문가들을 선별해 그들의 견해를 들어야 하고, 언론의 실태 왜곡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11쪽)”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구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흐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섯 개 장은 유형별로 진실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으로서 인간의 본성, 정보제공자, 전문가, 광고 등의 요인들을 설명하고 제5장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대립하고 있을 때 어느 쪽의 주장이 진실에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법을 설명하고, 마지막 장에서 진실을 구하는 자세 23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논지는 시쳇말로 거침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진보측 상황을, 또 어떤 때는 보수측 상황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조의 수준에 차이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촛불시위가 일어났던 사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2008년 미 쇠고기 국내 수입에 격렬히 반대한 민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인즉 전문가들의 위험에 대한 접근법이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데서 기인했다. (정부측) 전문가들은 위험의 정도를 확률로 판단한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를 놓고 전문가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죽을 확률을 ‘골프를 치다가 홀인원을 하고 그날 벼락 맞아 죽을 확률과 같다’라며 위험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일반인들은 위험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140쪽)” 그런 반면에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광우병과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소가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영상을 보여주며 광우병에 걸린 소로 설명하자, 민심은 난리가 났다. ‘저런 소를 어떻게 먹느냐’라고.(물론 동영상 속의 소는 후일 미국의 시민단체가 동물 학대를 고발하기 위해 찍은 영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광우병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 때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광장으로 모였던 것은, 바로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지 않다’라는 무의식 수준에 가까운 판단이 ‘광우병에 걸린 소’인냥 잘못소개된 동영상으로 인해 강화됐기 때문이다.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이전의 판단과도 일치하는 영상이라면 판단의 재료로서는 더 없이 좋다.(171쪽)”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전문가라고 하는 특정집단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조언을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를 믿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도 틀릴 수 있으며, 일반인과 같이 무리근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해관계자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전문가들이라는 사람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문가에 대한 지독한 환상에 빠진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2005년말 터진 황우석교수 사건입니다. 황우석교수가 2004년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배야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했다고 발표하여 온국민을 들뜨게 만들었지만, 일년 뒤에는 MBC PD수첩과 브릭의 젊은 과학도들에 의하여 그가 만들었다는 줄기세포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진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저자는 황우석교수를 가차없이 사기꾼, 홍보꾼, 정치꾼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특히 황우석교수가 과학계의 총아로 등극하면서 정부로부터 받은 658억원을 포함하여 민간기업으로부터 받은 연구지원비 1000억원을 독식함으로써 전도유망한 과학자들의 연구를 제대로 뒷받침할 연구비가 턱없이 부족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의료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의료서비스 가격에 관한 논평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부가 의료 서비스 가격을 통제하게 되면 의사를 지망하는 사람의 수는 물론이거니와 우수한 자질을 가진 의사 수도 줄어들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다른 나라에서 의사를 수혈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아마 그 나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을 받고 자격정을 취득하기도 수월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환자들은 낮은 가격에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지만, 질이 낮은 치료에 만족해야 하는 불상사를 감수해야 한다. 또 의료서비스 비용이 공짜거나 낮을 경우 워낙 많은 사람이 자주 병원을 찾는 바람에 정작 치료가 화급한 환자들이 뒤로 밀리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가격 통제를 정의구현으로 가기 위한 직행티켓으로 여기는 사고는 이처럼 위험하다.(164쪽)”
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라는 제목의 5장에서 지구온난화와 화석연료의 미래에 대한 경고에 대한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지구온난화는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고 연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2007년에 유엔의 기후변화위원회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논의를 집대성한 3000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기후게이트가 2009년에 터졌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단 기간에 결론이 나지 않는 사실을 두고 과학자들 간에 이견이 대립할 때는 언론의 입장이 애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의 입장이 애매해지면 일반대중은 헷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저자는 진실에 이르는 길은 탄탄대로로 열려 있는 도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주의깊고 성찰적 자세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3가지의 새겨둘 점을 정리하여 요약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들어보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신의 주장과 믿음에 겸손하며,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에 주의하고, 전문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례들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이해를 돕고 있으며, 글흐름이 좋아 단숨에 읽을 수 있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저자의 희망대로 진실의 가림막이 되는 것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우리의 판단에 허술한 구석이 없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